■'에즈원' 힙합바지에 리드미컬하게…최근 가요의 주된 흐름을 꼽으라면 단연 R&B다. 댄스의 10년 아성이 어느새 허물어지면서 그 자리를 R&B가 대신하고 있는 듯 하다.
20대 초반의 가수들, 특히 미국에서 건너온 교포 출신들은 너나 없이 R&B다. 미국에서90년대 초반 이후 최고의 트렌드가 된 R&B를 듣고 자란 이들이 이제 자신들의 R&B를 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음악적으로나활동면에서 R&B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어가고 있다. 애즈 원과 t도 그들 중 하나다.
애즈원
R&B 여성 듀엣 애즈 원(As One)을 만나면 두 가지 사실에 놀라게 된다. 하나는 이들이 너무 어리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너무 발랄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느낌은 이들이 부르는 노래와의 불일치를 전제로 한 선입견의 결과다.
애즈 원이 요즘 부르고 있는 노래는 2집 타이틀 ‘천만에요’ (신재홍 작곡/강은경 작사). 여리다싶은 두 사람의 목소리가 때로는 이름처럼 한명이 부르는 듯, 때로는 여러 겹의 코러스를 만들며 부드럽게 흘러가는 곡이다.
멜로디의 굴곡이 별로없는 대신 밀고 당기는 비트와 리듬의 움직임이 강조되어 흔히 듣는 가요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세련됨 또는 성숙함이라 부를만한. 같은R&B라고 해도 머라이어 캐리 같은 구세대 팝 가수보다는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에 훨씬 더 가깝다.
특히 FM에서 반응이 좋아 지난 주에만 58회 방송되었다. 왁스의 ‘화장을 고치고’에 이어 2위다. 음반 판매는 발매 3주 만에 15만장. 썩 좋은 성적이다.
두 멤버 중 민은 스물 셋, 크리스탈은 스물 하나. 민은 생후 3개월 때 미국으로 건너갔고, 크리스탈은아예 미국에서 태어난 교포다.
교회 성가대를 통해 노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솔리드 멤버였던 정재윤의 눈에 띄어 지난해 ‘Day by Day’로 데뷔했다.
데뷔 곡도 마찬가지지만 이번에 들려주는 나이답지 않은 음색과 감성은 전혀 의도한 것이 아니다. “한국에 와서 우리 노래가 어렵다는 말처음 들었어요. 우린, 그냥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노래처럼 부르는 건데요”
민과 크리스탈은 모두 꽤나 활달한 성격. 운동을 좋아하고 쉴 새 없이 재잘대는 스타일이다. 음악과는딴판이다. “무대에 서는 일이 아직 떨린다”고 말은 하지만 원 없이 방송 출연을 하고 싶은 욕심도 감추지 않는다.
무대에서는 염색 머리에 티셔츠,힙합 바지를 입고 뒤축에 바퀴가 달린 신발을 신고 뛰어다니듯 노래한다.
적어도 이들에게는 R&B도 “충분히 춤을 출만한 리드미컬한 음악”이기때문이다. R&B 여가수는 여성스런 옷을 입고 차분한 분위기로 노래하는 것이라는 통념을 깨기에 충분하다.
여러모로 애즈 원은 음악만 제외하면,또래 댄스 그룹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에게서 댄스=발랄한 10대 음악, R&B=차분한 성인용 음악이라는 이분법의 붕괴 조짐이 엿보인다고하면 지나친 생각일까.
■윤미래- 흑인감성 밴 만만찮은 울림
윤미래(21)의 보컬에는 ‘마니아’집단이 있다. ‘내안의 그대’나 ‘다시 만나줘’(업타운), ‘하루하루’(타샤니)에서 토니브랙스턴이나 로린 힐을 연상케 하는 그의 힘있는 울림은 많은 팬들을 끌어당겼다.
어디서나 검은 진주 같은 빛을 발해온 그의 목소리가 이번에는 ‘t’라는타이틀의 솔로 음반으로 홀로선다.
솔로 데뷔곡 ‘As Time Goes By’는 상당히 이색적인 곡이다. R&B특유의 화려한바이브레이션이나 꺾기, 혹은 윤미래의 장기인 힘있는 고음을 찾을 수 없다.
언뜻 보면 교포가수인 그가 들려줄 법한 ‘원판’ R&B와는 다소거리가 있는, 한국적인 발라드에 가깝다. 목소리에 한풀 힘을 빼고 나른한 저음으로 대신했다.
‘타샤니’를 그리워하는 팬들을 위한 보너스트랙 ‘하루하루’와비교해 들어보면 변신은 더욱 두드러진다.
하지만 그 만만찮은 울림은 홀로 무대를 채우기에 부족함은 없을 듯 하다. 부드럽고 나직한 이 노래는일견 쉬워 보이지만 쉽게 따라할 수 없는 짙은 흑인의 감성이 배어 있다.
마냥 나긋한 R&B나 발라드만 있는 것은 아니다. CBMASS가 랩을 넣은 ‘삶의 향기’, 드렁큰타이거가 참여한 ‘라 뮤지크’(La Musique) 에는 여전히 힙합의 저력이 살아 있다.
이제 스물 한 살의 윤미래는 어느새 데뷔 5년의 ‘중견가수’다. 96년 열여섯의 나이에 ‘업타운’멤버로 첫 출발한 그는 99년 래퍼이자 안무가인 애니와 함께 R&B 듀오 ‘타샤니’로 나타났다. 넷에서 둘로, 이제는 완전히 혼자다.
그는 ‘무섭다’고했다. “무대 위에서 혼자 걷는 것도 어색하기만 해요. 아직 한국말도 썩 능숙하지 못하고…” 그래서 그는 TV에서 ‘장기자랑’을 벌이는 대신 노래를부를 수 있는 라이브 음악프로그램이나 라디오, 공연 위주로 활동할 예정이다.
그는 “하고싶은 음악과 한국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음악에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이번 음반에서 어느정도 대중적인 고려를 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타고난 흑인적 감성과 음악적 소신, 그리고 대중적 인기 사이에서 얼마나 성공적인 줄다리기를 해내는가가 앞으로의 숙제다.
김지영 기자
koshaq@hk.co.kr
양은경 기자
k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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