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2년 9월13일 독일의 철학자 루드비히 포이어바흐가 68세로 작고했다.포이어바흐는 헤겔과 함께 마르크스의 철학사상을 형성한 두 개의 자양분이었다. 마르크스는 헤겔에게서 변증법을, 포이어바흐에게서 유물론을 흡수해 20세기의 70여년간 인류의 3분의1이 신봉할 철학체계를 수립했다.
물론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은 중기 이후의 마르크스에 의해 비판되었다.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이 관조적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인간의 활동을 혁명적이고 실천적이며 비판적인 것으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흔히휴머니즘적 성격을 띤다고 평가되는 초기 마르크스의 철학에는 포이어바흐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다.
포이어바흐는 하이델베르크대학과 베를린대학에서 공부하고 에를랑겐 대학의 강사가 됐지만, 그의 ‘죽음과 불멸에대한 생각’(1830)에서 개진된 기독교 비판이 교회의 노여움을 사 해직됐다.
베를린 대학에서 헤겔에게 직접 배우기도 한 포이어바흐는 당초에 헤겔좌파(청년 헤겔파)의 일원이었지만, 이내 헤겔 철학이 합리성의 허울을 쓴 기독교 신학에 지나지 않고 그 기독교의 신이 인간 본질의 소외된 형태일뿐이라고 판단해, 자기 나름의 유물론적 인간학을 수립했다.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의 아버지는 독일 근대 형법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파울 요한안젤름 포이어바흐(1775~1833)다.
안젤름 포이어바흐의 학문적 공적은 심리강제설과 죄형법정주의에 있다. 인간은 범죄로 얻게 되는 쾌락과 형벌로겪게 되는 고통을 비교하면서 행동하므로 형벌은 범죄로 얻는 쾌락에 대응하는 고통을 내용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심리강제설이고, 어떤 행위가 범죄이고그 범죄에 어떤 형벌을 주느냐 하는 것은 미리 정해진 법률에 따라서만 할 수 있다는 원칙이 죄형법정주의다.
고종석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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