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에는 휴전 이후의 ‘50년 세월’ 이 없다. 지금도 하루 몇 차례씩 총성이 들린다.서해바다 적진 깊숙이 떡 버티고 서 있는 우리의 섬, 백령도는 박제(剝製)된 곳이었다. 그 섬을 다녀왔다.■백령도는 거리에서 뿐만 아니라 분위기로도 서울보다 평양이 가깝다. 사방 지척이북한이다. 수많은 해안포대가 바로 코 앞에서 어른거리고, 바다와 하늘에선 북의 함정과 미그기가 예사로 보인다.
위치로 보거나, 군사력 대비로 보거나백령도는 고립무원의 섬이다. 그 섬에 도착하는 날 저녁, 한 떼의 해병이 깃발을 앞세우고 논두렁 사이로 구보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기백이 넘쳤다.황금 빛 들판 위로 빨간 깃발을 펄럭이며 달리는 해병들, 그 실루엣의 감동은 남달랐다. 코끝이 찡했다.
마을 길, 야산 능선의 진지, 들판의 자주포훈련장, 섬 곳곳에서 병사들을 만났다. 병사들의 두 눈은 초롱초롱 빛났다.
■백령도는 ‘작전상 후퇴’ 가 어려운 곳이다. 그래선지 섬 도처에는 철벽진지가있다. 외부와 차단된 채 몇 십일을 버틸 만한 방어요새다.
진지의 병사들은 유사시 백령도 사수의 특명을 지닌 셈이다. 군은 백령도를 조기경보와 전진기지로서의 전략적 가치를 내세우고 있다.
이런 전략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선 그만한 대응무력을 가져야 한다. 백령도의 우리 군은 적어도 사기의 측면에선, 그런 전략적 가치를 지키고도 남았다.
그러나 사기와 정서가 군력(軍力)의 전부는 아니다. 더구나 그 사기마저 지금 남북대화의 기류에밀려 흔들리는지 모를 일이다.
■백령도 병사들과 섬 주민들에게 남북문제를 물었다. 그들은 대답대신 웃었다. 웃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6ㆍ15 남북정상 회담 이후 사람들은 휴전선 155마일 철책선을, 그리고 백령도를 애써 잊으려 하고 있다.
그 ‘잊혀진섬’, 백령도사람들이 서울을 보는 눈, 남측 평양 방문단을 보는 눈도 남다르리라.
백령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예전보다 많아졌다고 한다.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이 백령도를 찾아 우리 병사들의 초롱초롱한눈을 보기를 권유한다.
이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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