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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철주 한국화전- 장맛같은 '삭힘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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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철주 한국화전- 장맛같은 '삭힘의 미학'

입력
2001.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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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석철주(51) 추계예대동양화과 교수는 모든 게 남들보다 10년은 늦었다. 국전 초대작가 청전 이상범(1897~1972)으로부터 처음 붓 잡는 법을 배운 것이 16세때였다.그것도 청전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봐줬던 아버지가 “막내 아들에게 그림을 가르쳐 달라”고 조른 덕분이었다.

27세 때 대학(추계예대)에 들어갔고, 나이 40이 돼서야 결혼을 했다. 그의 작품에서 우리네장맛 같은 ‘삭힘의 미학’이 풍기는 것은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스페이스 서울(02-720-1524)에서 열리는 그의 10번째 개인전은 이 ‘삭힘의 미학’을 음미할 수 있는 자리다.

‘생활일기’라는 이름이 붙은 전시작 20여 점은 모든 것이 곰삭았다. 난초, 분재, 갈대, 호롱 박 등 그가 그린 자연 사물은 하나같이 형태가 불분명하고 흐릿하다. 마치 빗물이 흘러내리는 유리 창을 통해 나뭇가지나 난초를 바라보는 것 같다.

‘생활일기-을숙도의 갈대는 사라지고Ⅰ’(세로 122㎝, 가로 53㎝, 2점 연작)을 보자. 작가는 우선 먹으로 바탕인 한지를 칠했다.

먹이 마르면 흰색 아크릴 물감으로한 번 더 화면을 칠한 후, 물감이 마르기 전 맹물에 적신 붓으로 갈대를 그렸다.

수용성 물감인 먹만 물을 받아들여 비로서 형태가 드러나는 갈대.그러나 작가는 마른 붓으로 여러 번 붓질을 해 갈대를 또다시 지웠다. 화면에서는 마침내 은근한 맛이 배어 나온다.

축축 늘어진 나뭇가지를 그린 ‘생활일기-선운사의 여름Ⅰ’, 탐스럽게 매달린 호롱 박을그린 ‘생활일기-주렁주렁 열렸네’도 마찬가지다.

드러내고 설명하기보다는 과감하게 비워두고 생략함으로써 문인화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씨는 “명료하지 않은 흐릿한 화면이야말로 장이나 김치처럼 한 번 담가두면 시간이 갈수록 깊은 맛을 내는 효과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작가는 판자촌이나 시장 사람들, 남북 이산가족처럼 현실적 소재를 다룬 85년 첫 개인전후, 질박한 장독 이미지를 표현한 ‘옹기’전(90년), 실패나 골무 등을 다룬 ‘규방’전(95년) 등 거의 5년을 주기로 한국화의 현대적 실험을해왔다.

‘맹물’로 그린 이번 전시도 그만의 실험 과정이다. 81년 중앙미술대전 특선, 97년 한국미술작가상 수상.

석씨는 “무엇을 의도적으로 그리기보다는 먹 스스로 형상을 드러내게 함으로써 겸손히 물러나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배우고 싶었다”며 “조선시대 분청사기나 백자의 은은한 미감을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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