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본토의 심장부인 워싱턴과 뉴욕이 상상을 초월한 테러를 당했다. 그것도 민간인들에 대한 대규모의 무차별한 테러이기에 인류의 인본주의적 가치마저 무참히 붕괴되었다.20세기가 이데올로기로 분열된 냉전의 시대를 화해와 평화의 시대로 마무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21세기의 출발은 심상치 않다.
세계화의 장미빛 미래는 국가의 의미를 퇴색시켰고 세계시민의 탄생을 예고했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21세기가 국경 없는 사회가 되리라고 말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일본의 우경화와 미국의 보수주의로의 회귀도 더욱 심화될것이 확실하다.
언제나 국제질서의 회오리에 휩싸여 온 우리나라는 위기시대를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가? 우리의 햇볕정책과 통일에의 길도 영향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민족의 미래를 낙관하던 입장은 수정이 불가피하다. 보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국가미래의 관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예를 들어 햇볕정책이 북한을 국제사회로 이끌고 있지만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활발히 활동하게 될 때의 전략을 정부가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국정운영에 있어서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다각적인 대책은 수립되어 있는지 정부에 묻게 된다.
중국 주석 장쩌민의 십여 년만의 북한방문이나 러시아 대통령푸틴의 북한방문도 우리의 햇볕정책이 촉매제가 된 측면이 있다. 한국과의 수교로 다소 위축되었던 이들의 관계가 근원적인 우호관계로 선회될 때 우리의 전략적 대책은 있는가?
6.15 남북정상회담의 민족적 의미를 퇴색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무턱대고 낙관적인 분위기에만 도취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북한의 세계무대 진출을 계기로 한반도를 둘러싼 21세기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한 국가전략은 체계적으로 준비되어야하기 때문이다.
여야 정치권의 모습은 국정을 논의하는 것인지 정권쟁취나 재창출을 위해 국정을 희생시키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장관 해임이 정치권의 기(氣)싸움으로 비쳐지고,정권관리를 위한 저급한 정치적 갈등이여야 모두 도를 넘는다. 모두 국가와 역사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책임있는국정운영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김 대통령이 당과 내각과 청와대의 인사개편을 실시했지만 자리 바꾸기의 개편은 변화를 위장한 현상유지에 불과해 실망도 그만큼 컸다. 경제개혁은 아직도 진행형으로 남아 있고 정부연구소의 책임자도 올해 IMF 이상의 경제위기가 올 수 있다는 발언을 해서 무리를 빚기도했다.
사회의 혼란도 심상치 않다. 교육을 위해 이민을 가고, 아파트청약에는 폭력조직이 등장하고, 공적자금이 투여되는 금융기관에서 창구직원들의 금융사고가 줄을 잇는다. 마약밀매 등 외국인 범죄도 증가하고, 인터넷에 대한 해킹으로 정부 전산망이 타격을 받기도 한다.
여야 정치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국정을 논의해도 시간이 부족할만큼 위기는 찾아오고 있는데 이들은 내년 대선에만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여 안타깝기만 하다. 더 이상 정치권은 정권의 유지와 쟁취에만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21세기는 이제 막 새 질서를 구성하는 불확실성의 시대로 돌입했고 국가경제와 안보를 근본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위기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19세기말 제국주의의 팽창이 준동하던 국제환경 속에서 국정대응 방안이 없었던 한말의 역사적 상황을 국민들에게 떠올리게 해서는 안된다.
이제 김대중 대통령도 지난 대통령들의 전철을 밟지 말고국정관리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집권 후반기에 보이는 레임덕 현상을걱정하여 국정관리보다 정권관리에 몰입하면 국정도 파탄이 나고 정권도 날아가게 된다.
야당도 국정관리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야 남은 기간 수권정당의 이미지를 높일 수 있다. 현명한 지도자라면 선택은 자명하다. 왜냐하면 위기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염재호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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