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이마트배 여자프로농구 여름리그 패권을 놓고 5차전(3승2패로 신세계 우승)까지 가는 접전을 벌인 신세계 이문규(45) 감독과 현대 정덕화(38) 감독이 격전을 끝낸지 3일만에 만났다.본사 13층 송현클럽에서 마주 앉은 두감독은 프로세계의 냉혹함을 잠시 잊고 선후배로 돌아가 여름리그를 치르면서 겪었던 뒷얘기와 여자농구의 발전방안 등에 대해 정담을 나누었다.
이 감독=리그 일정이 가장 길었고 다국적 용병의 도입에 따른 전력의 평준화로 어느 때보다 힘들었다. 우승이 확정된 순간 기뻤다. 정 감독이 여자농구의 새 바람을 일으켰다는사실에 축하를 보낸다. 앞으로 기회는 많고 좋은 경쟁자가 될 것 같다.
정 감독=원없이 싸웠다. 나름대로 성과도 거두었고 만족스러웠다. 선수들이 의욕을 갖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줬는데 나만 상(지도상)을 받아 면목이 없다.
이 감독=기아가 86년 창단했고내가 90년 3월 은퇴해 4년정도 (정 감독과) 코트에서 만난 것 같다. 포지션이 달라 맞부딪친 적은 없지만 정 감독은 상대 슈터를 수비하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우리는 현대나 기아시절 방열 감독밑에서 선수생활을 해 방 감독 스타일에 많이 접근해 있는 농구를 하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정 감독이 여자농구에 새 바람을 일으키면서 현대와 우승을 다투겠구나 예상했다.
우리 팀은 약간 기복이 있지만 조직력이 있다. 현대는 선수들이 ‘할수 있다’ 는 의욕으로 똘똘뭉쳐 신세계의 목덜미를 물고 늘어진 것 아니냐(웃음).
정 감독=우리 팀은 고스톱으로 치면 ‘광’은 없지만 ‘쌍피’는 많다. 장기레이스선 순항했지만 단기전에서 전주원의공백을 극복하지 못해 우승을 놓친 것 같다.
신세계는 조직력과 역할분담이 잘 된 것이 강점인 반면 가동선수가 적은 것이 흠이다. 이 감독은 겨울리그악몽(리그 1위로 진출했지만 4위 한빛은행에 패해 탈락)과 스폰서사라는 부담이 컸을 것 같은데….
이 감독=우리가 돈 내고 잔칫상을 차렸는데 남의 회사에 (우승을) 줄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스트레스가 심했다.
정 감독=나 역시 어려웠다. 처음부터 우승하겠다는 생각보다 플레이오프 진출이 목표였는데 목표를 달성하니 챔프전까지 욕심이 났다. 하지만 현대를 준우승으로 이끌었다는데 나 자신도 놀랐다.
이 감독=정 감독은 용병영입에서도 행운이 따랐다. 원래 우리가 안다(신세계), 샌포드(현대)와 계약을 추진했는데 샌포드가 미 여자프로농구(WNBA)에 진출한다기에 포기했다. 현대가 어떻게 샌포드를 잡았는지 나중에 알고 놀랐다.
아마 우리가 안다, 샌포드를 보유했다면 다른 팀들은 적수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정 감독=용병의 도입으로 힘있는 농구, 즉 볼거리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샌포드는 파워 있는 선수로 무엇보다 한국풍토에 잘 적응해 팀에 큰 보탬이 됐다.
신세계가 베스트5를 너무 혹사한 게 아니냐는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 현대는 인해전술이라는 표현처럼 10명에 달하는 선수를 기용했다. 고육지책이었는가.
이 감독=선수가 못할 때 빼는 것보다 ‘최선을 다한 뒤 지쳤구나’할 때 교체해주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체력안배를 내세워 경기흐름에 적응도 하기전에 빈번하게 교체하는 용병술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부에서는 나의 승부욕 때문에 그렇다고 하지만 주전과 벤치간 기량차이가 너무 컸고 스타를 보러 오는 팬들도 생각해야 했다. 올 시즌은 지방마다 코트 사정이 다른데다 원거리이동으로 많은 부담이 따랐다. 버스에서 5~6시간이상 시달린 적도 있고 24시간도 못 쉬고 경기를 했을 때도 많았다.
정 감독=우리팀은 지역연고가 늦게 결정돼 홍보가 부족했던 점이 아쉽다. 앞으로 연고지인 청주시와 협력해 코치클리닉, 농구교실 등을 열어 팬유치에도 노력할 예정이다. 우승까지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는가. 배우고 싶다.
이 감독=챔피언결정 1차전서 정선민이 부상했을 때 곤혹스러웠다. 특히 광주 홈에서 열린 3차전서 패했을 때 어려웠다. 우승직후 ‘정선민의 신세계’ 운운하는 것이 불만스러웠다. 정선민의 역할이 크지만 드러나지 않는 양정옥 장선형 등의 활약이 한데 모여 이뤄낸 우승이다.
정 감독=이 감독에게 가야하는 지도상을 받아 부담스럽다. 선수들이 더 잘했는데 동정표를 받은 것 같다.
이 감독=우승직후 기자와 이야기하고 있는 도중 정 감독이 지도상을 타고 가는 것을 봤다. ‘내가 우승감독인데…’하는 생각이 없진 않았겠지만 몇 개월만에 우승팀 신세계를 물고 늘어질 정도의 지도력을 발휘한 정 감독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여동은기자 dey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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