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다시 만난 건 아시아나CC(경기 용인시) 파3홀코스 퍼팅연습장에서였다.에버랜드 드라이빙레인지에서 샷을 가다듬은 뒤 막 이곳으로 와 퍼트연습에 비지땀을 쏟고 있었다. 캐디겸 매니저인 남편 김대영(28)씨도 뙤약볕을 고스란히 받으며 아내를 지켜보고 있었다.
김은영(29). 7일 제2회 한빛증권클래식에서 깜짝우승을 차지해 골프팬들의화제가 된 프로골퍼. 한참 늦은 나이인 지난해 프로에 입문, 1년여만에 정규투어 정상에 오른 데다 특히 캐디출신의 이력이 여느 우승자와는 다른 관심으로 그에게 쏟아졌다.
우승전후로 달라진 점을 물었더니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 준다”며 웃는다(인터뷰중에도 내장객들이 이들 부부에게 연신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우승한 날 밤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꼬집어보고 또 한번 꼬집어보고…. 꿈은아니었다. 자려고 눈을 감으면 코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고향 광주에서 여고를 졸업한 김 프로는 서울 언니집에 다니러 왔다. 넉넉치 못한 집에서 다 큰 처녀가 빈둥거리기도 그렇고 바람도 쏘일 겸 해서였다. 어느날 눈에 띤 생활정보지.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캐디모집 광고였다. 4시간 일하고 5만원(당시 캐디피)을 받는 것도 그러했지만 나머지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
1992년 9월부터 아시아나CC 직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정식 개장전이라 캐디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골프장측은 이듬해 6월 오픈을 하면서 여직원중 희망자에 한해 캐디로 전환시켜 주었다.
김 프로는 1년 가까이 더 사무직에 있다가 94년 5월부터 캐디생활을 시작했다. 남들이 하는 것이 재미있어 보여 이해 9월부터 몰래 시작한 ‘똑딱볼’로 맛들인 골프를 필드에서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가까이 다가온 사람이 1년 연하인 지금의 남편이다. 골프장 경기과 직원이었던 김씨는 틈 날 때마다 스윙을 잡아주었다.
당시 월급이 48만원이었음에도 70만원이나 되는 맥그리거 풀세트를 사주면서까지. 김씨 역시 레슨을 받을만한 처지가 못돼 어니 엘스를 표본으로 삼아 골프서적을 탐구하며 독학하는 프로 지망생이었다.
캐디생활이 몸에 배일 즈음 김 프로의 의식에 변화가 일어났다. “골프장이란 곳이 사회적 지위가 있거나 재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출입하지 않느냐. 그런 분들을 따라다니다 보니 언제부턴가 자수성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내린 결론은 프로골퍼의 길.
그런 와중에 김씨가 94년 5월 입대했다. 허전함을 아무도 없는 필드에서 연습으로 달랬다. 96년 7월 제대한 김씨가 골프장에 다시 돌아왔을 때는 예전의 김은영이 아니었다.
군에서 운동도 못한 데다 김 프로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하자 자신의 꿈을 접고 모든 정열을 김 프로에게 쏟았다. 다시 원군을 얻은 김 프로는 “그 나이에 웬 프로냐”는 따가운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근무외 시간을 연습에 매달렸다.
98년 4월 단 한번만에 세미프로테스트를 통과했다. 그리고 “누나” “동생”하던 사이도 같은해 11월 “여보” “당신”으로 맺어졌다. 결혼으로 안정감을 얻은 김 프로는 지난해 2부 미사일드림투어에 출전, 7월 2차전서 우승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그는 이 대회 우승으로 올시즌 정규투어 시드권을 따냈지만 당당하게 프로에입문하고 싶었다. 그래서 10번이나 떨어졌던 프로테스트에 지난해 9월 다시 도전, 꿈에 그리던 정회원 자격증을 따냈다.
지난해 김 프로가 2부투어에서 벌어들인 상금은 800여만원. 남편의 월급을 합해봐도 빠듯했다. 그래서 대회를 앞두고도 다른 선수들처럼 라운드를 자주 갖지 못한다. 캐디생활 7년의 감각을 살려 코스 파악정도에 그칠 뿐이다.
지난 4월 남편마저 자신의 뒷바라지를 위해 직장을 그만둘 때는 내심 경제력 때문에 벙어리 냉가슴을 앓았다. 김 프로는 “내가 잘해야 된다는 벼랑끝 의식때문에 이번에 우승한 건지도 모르겠다”며 쾌활하게 웃는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한마디 힘주어 말했다. “절대 깜짝스타로 사라지지 않겠다”고.
●신상명세
생년월일 1972.10.12
출생지 광주시
학력 광주 용봉초등-신광여중-송원여상
신장및 체격 165㎝ 71㎏
드라이버비거리 240야드
수상경력 2000.7 드림투어 2차전 우승
2001.9한빛증권클래식 우승
남재국기자
jk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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