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과 풍선이 파격적으로 만났다.지난해 광대의 자기정체성을 다룬 연극 ‘이’(爾ㆍ‘그대’라는 뜻의 한자어)로 한국연극협회 주관 ‘올해의 연극 베스트 5’에서 작품상과 희곡상을 휩쓴 신인 연출가 김태웅(36)이 극본과 연출을 맡은 ‘풍선교향곡’(악어컴퍼니)은 파시즘의 다양한 실체를 풍선을 활용한 경쾌한 재치와 뚜렷한 주제의식으로 모자이크 했다.
1980년 5월 핏빛 광주. 고무줄놀이를 하는 천진한 소녀들 틈 사이로 벼락같은 총성이 울리고 소녀의 어머니는 총에 맞아 쓰러진다.
가볍게 하늘거리던 풍선들은 비명을 지르며 터져나간다. 의사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의학용어로계속 떠들며 어머니의 사인을 ‘심장마비에 의한 쇼크사’라고 말한다.
신군부는 한바탕 난잡한 파티를 벌이고, 용감무쌍한 ‘빨간장갑단’은슬로 모션으로 축구를 하며 상대방의 가슴을 꼬집고 권투를 하며 귀를 물어뜯는다.
파시스트들은 우람한 체격과 경직된 표정에 위압적인 고함을 지르지만 행동은 바보 같고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이 작품은 지난 시대의 비극은 물론이고 파시즘이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 여러 부문에 암암리에 스며 있는 모습도 살핀다.
동성애 관계에 있는 남자에게 위압을 가하는 또 다른 남자, 직장에서는 억눌린 소시민이지만 거침없이 성추행을 저지르는 사람들, 지하철에서 젊은이들에게 “박정희 시대가 좋았어.
그 때처럼 때려잡아야 해”라고 중얼거리는 중년 여성을 통해 파시즘이 역사적 과거형에 머물거나 현격한 힘의 격차에서만 비롯되는 현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김태웅은 당초 이 작품을 무용으로 무대화하려고 했다가 극적 구성을 가미해 연극으로꾸몄다. 그래서인지 뚜렷한 줄거리나 인과관계가 없다.
대사도 많지 않다. 몸짓과 표정, 그리고 ‘아베 마리아’ ‘수지 큐’ ‘소양강 처녀’에서 힙합, 재즈까지 다양한 음악으로 파시즘의 단편을 상징화한다.
젊은 배우들의 몸짓에는 다듬어진 세련미 대신 활력과 재기가 넘친다. 자칫 난삽해보일 수 있는 구성이지만 장면마다 작가의 뚜렷한 주제의식이 통일성을 부여한다.
여러 가지 모양의 풍선은 작품 곳곳에서 꽃으로, 놀이도구로, 때로는 고문의 상징으로 변화하면서 발랄한 오브제로 등장한다. 한없는 자유로움과 가벼움을 담고 있는 풍선, 그렇기에 귀를 찢는 파열음은 더 충격적이다.
30일까지 바탕골소극장. 정미설 박정환 이지현 등 출연. 화~목 오후 7시30분, 금~일 오후 4시ㆍ7시 30분.
양은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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