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칭찬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개성이 두드러진 캐릭터도 아니다. 주연도 아니다. 그러나 그는 무작정 적개심만 드러내는 여솔(정우성)과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 일을 그르치는 최정(주진모) 사이에 균형을 잡아간다.바로 진립(안성기)이다. 나이가 지긋한 그는 때론 아버지처럼 감싸안고, 때론 노련하고 날쌘 무사(활의 명수)로서 위기를 헤쳐간다.
어느 영화보다 혹독하고 힘들었던 영화 ‘무사’ 촬영. 그러나 안성기는 불평 한 마디 없었다. 오히려 후배들 촬영까지 지켜보는 성실성을 보였다.
“후배보다더 열심히, 더 즐겁게 촬영했다”고 말했다. 후배들도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중국 여배우 장쯔이는 “배우들이 왜 그를 ‘한국 영화계의 아버지’라고표현하는지 알 수 있었다”고 했다. “내가 할 역할이 바로 그런 것 아닌가.”
자기의 존재보다는 젊은 배우들의 모습을 두드러지게 하는 조연. 아니면 ‘구멍’ ‘진실게임’처럼 흥행이나 인기를 떠나 자신이 아니면 만들어지지 못했을 작은 영화에 기꺼이 출연하는것.
한국 영화계의 열악한 자본을 생각해 한때 스스로 높은 개런티를 거부했던 안성기는 이렇게 몸을 낮추었다.
요즘 그는 시사회에서 만나면 후배들의 연기 칭찬부터 한다. 자신의 연기에 대해 설명도, 변명도 하지 않는다. “이전에는 어떻게 연기할까 고민했는데, 이제는 저 작품에 내가 얼마나 잘 스며들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그것이 오히려 연기 폭을 넓혀주었다. 늘 도시적인 코믹 배우, 정형화한 소심한 소시민의 모습에서 중년의 피곤하고 따뜻한 인물, 젊은이들의 혈기를 다독거리는 어른으로 자리잡게 했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도 벌써 64편이나 출연한 한때 한국 최고 배우였다. “자리는 늘 바뀐다.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할 뿐이다. 편안하다.”
‘칠수와만수’ 부터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까지 그와 명콤비였던 또 다른 코미디 스타 박중훈. 인정하기 싫겠지만 그도 벌써 중년배우가 됐다.
그 사실이 그를 초초하게 만든 걸까. ‘세이 예스’에서 보듯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던 연기변신을 시도하고, 할리우드 진출을 자랑한다. 여전히 그는 주연 배우이고 싶고, 한국 최고의 코미디 배우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어쩌랴. 사이코 연쇄살인범으로서의 너무 늦은 변신은 ‘게임의 법칙’처럼 날카롭지 못하고, 기존 코믹 이미지가 너무 강해 ‘웃음’이 새어 나오게 하고, 10, 20대 초반 관객은 후배 코미디언(송강호, 차태현)에게 더 열광하는데.
그래서 “이제는 할리우드에 매달리겠다”고 했다가 “그만 두겠다”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박중훈.
너무 딱딱한 껍질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럴 때 명콤비이자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선배 안성기를만나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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