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또 다시 어지럽다.DJP공조가 붕괴되면서 신여소야대 정국이 등장했다. 자민련의 교섭단체 와해로 3당체제가 양당체제로 바뀌게 됐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당정쇄신을 단행했지만 이한동(李漢東) 총리의 총리직 잔류로 모양새가 구겨졌고당 대표 인선은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말이 많다. 집권당이 뒤뚱거리는 모습은 국정혼란과 직결된다.
혼돈을 거듭하고 있는 정치권은여야 모두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우선 집권당은 어줍지 않은‘수의 정치’ 청산이 불가피해 졌다. 집권당이 ‘수의정치’를 계속하려면 야당에서 의원을 빼오는 등 정계개편을 강행해야 하는데 그럴 힘도 없고 수단도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김 대통령은 국민의 정부 출범초기에 명분 있는 정계개편을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있었음에도 이를 택하지 않았다가 궁지에 몰린 쓰라린 경험이 있다. 수적 열세로 총리 인준이 6개월 이상 지연됐고 한나라당의 정치공세가 갈수록 심해지자 결국 의원빼오기를 통한 ‘수의정치’를 뒤늦게 선택, 엄청난 비난을 감내 해야만 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김 대통령은 DJP와 공조가 깨지자 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를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쉽지가 않다.
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가 치솟는 인기 속에서 힘이 있었던 정권 출범초기에도 어려웠는데 바닥으로 내려간 인기에 레임덕을 앞두고 있는 지금 어느 정도 가능할지 의문이다. 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를 하기위해서는 집권층의 뼈를 깍는 자성과 발상의 전환이 선행돼야 한다.
한나라당은 집권당의 혼선이 자신들의 지지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는 데 유념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정부와 여당의 정책을 비판만 할 게 아니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상대방의 실책으로 인한 반사이익만을 챙겨 가지고는 수권태세가 돼 있다고 주장하기 어렵다.
국정혼란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집권당에 있지만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에도 일정한 책임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국정의 상당부분을 주도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자민련은 교섭단체가 깨지고총재를 제명해야 하는 등 최악의 위기상황을 맞았다. 자민련은 차제에 겸허하게 자신의 실체를 되돌아 봐야한다. 캐스팅 보트를 지나치게 활용한 무리한 틈새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소수의 목소리를 존중하지만 소수가 다수를 훼방놓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정치권이 시험대에 오른 또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남북문제다. 6개월 여 동안 중단된 남북대화가 장관급 회담을 통해 이번 주 서울에서 재개된다.
미국도 대북문제에 대한입장정리를 끝냈고 김 대통령은 부시 미대통령과 이달 24일에 이어 다음달에도 정상회담을 갖고 남북문제에 대해 머리를 맞댄다. 부시 행정부 출범후 길게는 10개월, 짧게는 6개월 답보상태에 있었던 남북관계가 재시동에 들어가는 것이다.
정치권은 남북문제가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이념논쟁을 주고 받았고 그 결과는 임동원(林東源) 장관 해임안 가결과 정치지도의 대변화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제 남북문제는 실제상황이 됐다. 북한을 평양에 묶어놓는 가상상황이 아니다. 북한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중국 및 러시아 방문과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의 평양방문 등 주변상황을정리하고 본게임에 뛰어 들었다. 정치권의 남북문제에 대한 대응 하나하나가 정부의 대북정책은 물론, 북한의 대남전략과 미국의 대북정책수립에 곧바로영향을 준다.
정치권은 안팍으로 새로운 환경에서내년 대선의 분기점이 될 가을정국을 맞고 있는것이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영수회담이다. 김 대통령과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총재는 지난 7차례의 영수회담과 전혀 다른 상황에서 영수회담을 갖는다.
시험대에 오른 정치권의 일차답안지는 영수회담의 성과이다.
영수회담이 정치적 갈등을 걸러낼수 있는 게임의 룰에 합의하는 등 미래지향적인 해법을 제시할 경우 정치에 일말의 기대를 해 볼 수 있다. 그렇지 않고 과거처럼 쓴 종말을 남길경우 국민은 정치에 대해 지긋지긋한 혐오를 다시 할 수밖에 없다.
이병규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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