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4년 9월11일 프랑스의 시인 피에르 드 롱사르가 루아르 지방의 방도무아에서 태어났다. 1585년 몰(歿).롱사르는 16세기프랑스 최대의 시인이자, 중세 서정시와 근대의 상징시를 잇는 교량이었다. 18세에 청각을 거의 잃었지만, 고전 문학을 공부하는 한편 프랑스어로 시를 쓰는 데 정진해 12음절 시구(알렉상드랭)를 확립함으로써 고전 극시의 길을 열었다.
그리스ㆍ로마 문학에 대한 롱사르의 입장은 이중적 이었다.그는 고전 문학의 보고를 최대로 훔쳐내기 위해 애정을 지니고 그것을 연구했지만, 한편 그 고전 문학에서 독립된 프랑스어 문학을 확립하고 싶어했다.요컨대 그의 목표는 프랑스어를 고대 그리스어나 라틴어 수준의 격조 있는 문학 언어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 목표는 롱사르 개인의 목표라기보다는 롱사르를포함한 이른바 플레야드파의 공동 목표였다. 더러 칠성시파(七星詩派)라고도 번역되는 플레야드파는 1550년을 전후해 파리의 코크레 학원에 모여든롱사르, 뒤 벨레, 조델, 바이프, 벨로, 티아르, 장 도라 등 일곱 명의 혁신적 시인들이다.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인 뒤 벨레의 ‘프랑스어의 옹호와선양’은 이 시파의 출범선언문이자, 프랑스어 문학의 독립선언문이라고 할 수 있다. 플레야드는 본디 그리스 신화에서 아틀라스의 일곱 딸을 가리킨다.
롱사르의 ‘마리에게보내는 소네트’. “꽃다발 손수 엮어서/ 보내는 이 꽃송이들/ 지금은 한껏 폈지만/ 내일엔 덧없이 지리// 그대여 잊지 마라/ 꽃같이 예쁜 그대도/세월 지나면 시들고/ 덧없이 지리, 꽃처럼// 세월이 가네, 세월이 가네/ 우리도 가네, 흘러서 가네/ 세월은 가고 땅에 묻히네// 애타는 사랑도죽은 뒤에는/ 속삭일 상대자 없어지리니/ 사랑하세나, 내 꽃 그대여”
고종석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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