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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 이원순 前 국사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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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 이원순 前 국사편찬위원장

입력
2001.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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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1월 말경이었다. 6ㆍ25 정세가 중공군에 의해 반전되면서 수도 서울이 재차 위협받는 절박한 시기에 나는 다행히도 영등포에서 남행하는 피난 열차를 탈 수 있었다. 한강에 가설된 배다리를 건너와 영등포역에서 겨우 올라탄 곳은 기차 안이 아니라 지붕 위였다.매서운 추위에 시달리고 굶주린 배를 움켜쥐면서 굴러 떨어지지 않기 위해 버텼고, 졸음을 참아가며 1주일을 기차화통 지붕 위에서 고투한 끝에 대구 역에 닿을 수 있었다.

휘청거리며 조심스럽게 플랫폼에 내려선 나는 한순간 숨막히는 충격에 휩싸였다. 나의 시선을 멈추게 한 것은 객차와 플랫폼 사이에 버려진 팔뚝보다 작은 신생아의 연약한 시체였다. 갓 태어난 뒤 버려져 숨진 갓난아이의 얼어죽은 모습이었다.

한순간 나는 전율할 수 밖에 없었다. 자기 몸의 분신이요, 뜨거운 사랑에 의한 귀한 ‘소산’을이처럼 무정하게 버리도록 만든 전쟁이 야속했다. 분만하자 마자 아이를 죽도록 내버려둘 수 밖에 없는 기막힌 사정을 떠올리면서도 모성애를 저버린 인간의 비정함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처절하고 기막힌 기억은 내 일생동안 좀처럼 지워버릴 수 없었다. 이와 더불어 동족 상쟁의 전란기에 자행됐던 인간의 만행과 광포를 수 없이 대하면서, 그 이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인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않을 수 없었다.

이 때 나는 인간을 초월한 위대한 섭리를 생각하게 되었다. 무참히 찢겨 나가는 인간에 대한 나의 믿음, 쓰려 오기만 하는 나의 비애를 호소하고 위로 받고 싶은 위대한 존엄자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나는 당시 교인은 아니었지만 소개를 받아 천주교의 이른 바 ‘소신학교’의역사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하느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배움의 동산에 몸담고 있었지만 나는 그저 역사 교사로 근무할 따름이었고, 신학교는 나의 직장일 뿐이라는 오만한 생각을 가져왔었다. 그런 나에게 대구 역에 내버려진 한 신생아의 동사한 시체와의 충격적인 만남은 나에게 인간, 하느님 그리고 삶의 의의와 진실의 허실을 생각하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믿음의 문제만이 아니라 삶의 가치가 무엇일까라고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이다. 이는 나의 신앙 간증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의 삶을 살고 있는 한 인간의 처절하고도 충격적인 기억, 그리고 삶의 가치와 진실에 대해 말하고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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