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낮에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한 바람이 불고 검푸르던 산그늘도 많이 엷어진 것을 보니 결실의 계절 가을이 멀지 않은 듯 싶다. 지극히 정직한 것이 땅이라서 이제 수확 때가 되면 봄부터 땀흘려 열심히 일한 사람은 많이 거두고 빈둥거리며 게으름을 피운 사람은 적게 거두게 될 것이다.살아가는 이치가 그러한데도 우리는 나와 남 사이에 존재하게 마련인 노력에 따른 결과의 차이를 잘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학력에 따른 임금 차이를 못마땅해하고,배움의 양이나 질이 다를 터인데도출신학교와 전공을 감안한 인재등용을 싫어하며,잘 사는 사람의 씀씀이를 나의 그것과 다르다고 해서 과소비라고 능멸하고,머리가 좋건 나쁘건 동일한 교육을시켜야 한다면서 평준화제도를 고집하고 있다 우리들의 생각 속에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든 면에서 똑 같아야 한다는 균등주의가 강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균등주의는 사람들에게서 열심히 일하려는 의욕을 빼앗아 간다. 선생이 학생들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모두에게 만점을 준다는데도 남보다 열심히 공부할 학생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균등주의는 또한 모험심과 창의성그리고 다양성의 발휘를 억제함으로써 경제발전을 저해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일을 시도하거나 신제품을 개발하여 좋은 결과를 얻게 되더라도 그것을 남과 똑 같이 나누어 가져야 한다면 누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겠는가.
역사상 균등주의를 중시하는 나라 치고 선진국이 되었거나선진국의 위치를 고수한 나라는 없다. 노력한 만큼 대접받는 관행이 정착되어있는 미국이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라는 사실과 한 때 선진국이었던 아르헨티나가 균등주의에 빠져들면서 후진국으로 전락했다는 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우리 나라처럼 균등주의 사상이 팽배해 있는 나라도 드물다. 그렇게 된 것은 일제침략기와 한국전쟁의 시기를 거치는 동안기존의 신분질서가 와해되면서 잘났거나 못났거나 누구나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화된 데 원인이 있는 듯 싶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중한 존재이므로 모든 이의 인격을 똑같이 존중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며 따라서 누구에게나 동일한 기회를 보장해주는 일은 자유로운 사회를 건설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초석이 된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이 개성과 능력 그리고 노력의 차이에 따른 결과의 차이를 무시하고 모든 사람이 똑 같이 나누어 갖는 것이 옳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누구에게나 동일한 결과를 보장해주면 당장은 평등한 사회구현에 도움이 되는 것 같이 보여도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 사이에 재산과 지위와 명예에 있어서의 불평등은 더 커진다.
이치가 그러한 데도 우리 나라는 점점 더 결과의 평등을 중시하는 사회로 변모되어 가고 있어 문제다.이대로 가다가는 머지 않아 그 동안 이루어온 경제발전의 성과들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
만일‘똑같이만 살면 못살아도문제될 것이 없다’는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바라면 그 결과 경제가 파탄에 이르는 것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과 기업이 자유를 찾아 이 나라를 등지게 될 것이다. 걱정인 것은 그것이 바로 나라를 쇠망으로 이끄는 지름길이라는사실이다.
우리가 과연 그러한 결과를 원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이 나라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우선 노력한 바에 따라 보상의 크기가 달라지는 것이 옳은 일임을 인정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시장의 역할은 증대해 나가고 정부의 영역은 축소해 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정부는 그 속성상 평균과 획일화를 표방함으로써 균등주의를 조장함에 반해 시장은 기회의 평등을 존중하면서도 결과의 다양성을 보장함으로써 다수의 구성원에게 번영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이지순 서울대교수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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