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인터내셔널 그룹(AIG)이 8일 현대증권 신주 인수가격을 7,000원으로 끌어내리는데 마침내 성공했다. 현대증권 이사회가 신주 가격을 8,940원으로 결정한 지난달 23일부터 2주동안 이 가격을 끌어내리기 위한 AIG의 전략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치밀하고 정교했다.AIG가 처음 신주 가격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은 현대투신ㆍ증권 매각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 당일인 지난달 23일 오후. 우리가 협상 타결을 자축하는 샴페인을 터뜨리는 동안 AIG측은 해외 언론을 통해 “현대증권 신주가격에 크게 실망했다”며 불만의 포문을 열었다.
24일에는 다시 국내 언론에 공식 입장을 밝혔고, 30일에는 모리스 그린버그 AIG 회장까지 직접 나섰다. 발언의 강도도 ‘협상 장애’에서 ‘협상 결렬’로 점점 높아졌다. 이후 AIG는 현대에 신주가격 인하를 집요하게 요구하고, 기존 주주 반발을 약화시키기 위한 새로운 제안도 내놓았다.
AIG가 전방위 공격을 하는 동안 우리 정부는 “저렇게 지독한 협상상대는 처음 봤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AIG의 불만이 처음 터져 나온 직후인 지난달 24일 정부는 “이해할 수 없다. 추후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전략인 것 같다”는 안이한 반응을 내비쳤다.
AIG의 공세가 계속되자 정부는 2일 “현대증권이 이사회를 다시 열어 신주 가격을 낮출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 상대방인 AIG에 “당신 패가 유리하다. 밀어붙여라”고 말해준 셈이다.
협상기간 내내 “AIG가 (우리경제의) 구세주 같다”고 말했던 정부는 행여 신주가격 이견으로 협상이 깨질까 전전긍긍하다 결국 줄 건 다 내주고 말았다. AIG에 비하면 정부의 협상력은 한수가 아니라 열수, 백수쯤 아래 같다.
남대희 경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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