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주(李相周) 청와대 신임 비서실장은 ‘화합과조화’를 강조하면서 “비서실이 전면에 나서면 부처의 기능이 왜곡되고 축소되는 만큼 조용한 비서실이 되도록하겠다”고 말했다._이상주 비서실장 체제의 ‘키워드’는.
“화합과조화다. 갈등의 시기에 절충ㆍ조정하고 해결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경상도 출신 비서실장의 임명에는 지역갈등 해소에대한 기대가 실려있다고 본다.”
_비서실을 어떻게 이끌어 갈생각인가.
“대통령의국정 수행을 보좌하는 임무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특히 민의를 왜곡하지 않고 대통령께 정확히 전달하는 공정성과정직성이 중요하다. 수석 비서관들이 조화와 일체감을 갖고 일하도록 하겠다.”
_대야 관계에 대한 견해는.
“야당및 정치인들과 대통령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겠다. 당장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총재와의 영수회담부터 챙겨야할 것 같다.”
_언제 통보 받았나.
“금요일(7일) 저녁 박지원(朴智元) 정책기획수석을 만났다. 박 수석을 만나고 집에 오니 저녁 8시30분께 대통령께서 직접 전화를 걸어 수락해 줘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이 실장은 교수출신으로 드물게화통하다. 그는 1982년부터 98년까지 무려 17년간 3대학 총장을 역임했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1980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 등을 지내,행정경험과 함께 정치력도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박지원 정책기획수석과는 문화관광부 장관 시절 ‘한국 방문의 해’ 추진위원장으로 같이 일을 하면서 호흡을 맞춘 적이 있고 이 때의 인연이 발탁에 영향을 미쳤다. 구홍희(具弘姬ㆍ60) 씨와 1남2녀.
이영성기자
leeys@hk.co.kr
■인선 뒷얘기 / 일부수석들 "이상주씨가 누구지"
이상주 청와대 비서실장의 임명소식이 알려지자 일부 수석비서관들은 9일 “그 분이 누구냐”고 되물을 정도였다. 이 실장이 의외이자 정치권 외부의 인물임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같은 의외성과 비정치성은이 실장을 낙점하기까지 적지않은 어려움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후보자가 10명 정도였다”는 청와대 박준영(朴晙瑩) 대변인의 전언처럼 비서실장을 널리 구했고 그만큼 적임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서실장의 원안은 박지원(朴智元) 정책기획수석이나 남궁진(南宮鎭) 정무수석 중 한 명이었다. 이 같은 구도가 바뀐 데는 여권 안팎에서 강하게 쇄신론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한동(李漢東) 총리가유임되고 한광옥(韓光玉) 청와대 비서실장이 당 대표로 내정된 상황에서 비서실장마저 측근을 앉히면 빅3 인선에서 신선함이 없어질 것이라는 부담이 작용했다. 당에서 박지원 수석등에게 비토 움직임을 보였다는 점도 인선 구도가 변하게 된 한 요인이다.
측근 배제 방침이 정해지면서외부 인사 중 덕망있는 비호남출신을 찾기 시작했다. 정치권에서는 TK인 장영철(張永喆) 노사정위원장, PK인 김기재(金杞載) 최고위원이 거론됐고 이헌재(李憲宰) 전 재경부장관 등도 검토됐다.
그러나 “정치권이나 관료 출신에서 발탁하면 뒷 말이 끊이질 않을 것”이라는 지적에 따라 학계로 눈을 돌렸고 3, 4명의 학계 출신 후보 중 대학 총장,교문수석(1980년) 등 조직관리 경험이 많은 이상주 실장으로 압축됐다. 이 실장이 경북 경주 출신이라는 점도 고려됐다.
이 실장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의 인연은 별로 없다. 이 실장은 1997년 한림대 총장 시절김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강연을 하러 왔을 때 처음 만났다. 그 이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간접적인 조언을 했다.
/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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