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거듭된 통신비밀 보호의지 천명에도 불구하고 올 상반기 감청 및 통신자료 조회건수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개인 사생활 침해에 대한 우려가 수그러 들지 않고 있다.가장 큰 인권침해 소지를 안고 있는 긴급감청은 줄었지만 전체 감청건수 증가와 함께 영장이 필요 없어 수사기관이 자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통신자료 조회건수가 5만건 이상 늘어나 이러한 우려를 더욱 증폭시키고있다.
■국정원 감청증가가 주원인
올 상반기에 발급된 감청 영장은 812건으로 지난해 상반기 840건보다 3.3% 줄었지만 실제 통신감청 건수는 25.9% 늘어난 1,489건으로 집계됐다.
1998년 5,901건을 정점으로 99년 상반기 1,356건, 지난해 상반기 1,197건으로 감소추세를 보이던 감청건수가 현정권 들어 처음 증가세로 반전됐다.
정통부측은 이에 대해“인터넷을 통한 청소년 성매매와 불법 음란물 유통 등이 급증해 인터넷에 대한 감청이 많아졌고 이동전화 음성사서함 및 문자메시지 이용자 증가로 관련감청 건수도 늘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인터넷 감청과 사서함 감청건수는 각각 88건과 47건씩 증가했다.
하지만 감청건수 증가의 결정적인 이유는 99년 전체 828건, 지난해 상반기 377건에 불과하던 국정원의 감청요청이 633건으로 폭증했기 때문.
같은 기간 경찰 감청건수는1.7% 줄고 검찰 감청은 22.2% 증가한데 비해 국정원 감청은 무려 75.9%나 늘었다.
감청증가가 범죄 수사때문이라는 해명과 맞지 않는 부분이다.정부의 ‘햇볕정책’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감청이 증가한 배경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한나라당은 감청 증가 이유를 소명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개인 통신자료 열람 큰 폭 증가
통신 가입자의 인적사항이나 통신일시와 상대방 번호 등 개인 통신정보를 수사기관이 열람하는 통신자료 조회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5만2,848건(71%) 증가한 12만7,289건으로 나타났다.
통신수단별로는 이동전화가 전체의 77.6%인 9만7,482건으로 가장 많았고 유선전화 2만5,114건, 인터넷ㆍPC통신이 4,454건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용자 ID 도용등 사이버범죄 증가로 인터넷ㆍPC통신 자료제공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12.5%나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시민단체 등에서는“대검찰청에서 총괄하는 감청업무와 달리 통신자료 제공 요청은 일선 수사기관에서 영장 없이 직접 집행하기 때문에 자의적 해석에 따른 인권침해 소지가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통신인권 보호장치 지속적 마련 필요
한편 감청 및 통신자료열람 건수의 양적 증가를 억제하는 것보다는 구체적인 통신인권 보호장치를 만드는 ‘질적 관리’가 더욱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수사상 필요에 의해 감청을 한 뒤 36시간 이내에 사후영장을 발부받도록 돼있어 첨예한 인권침해 논란을 낳았던 긴급감청 건수는 전년 동기 68건에서 41건으로크게 줄었다.
또 비밀번호 자체를 수사기관에 제공해 비난을 받았던 음성사서함 및 e메일 감청이 지난해 지침 개정에 따라 내용만을 수시 제공하는 방법으로 바뀐 것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정통부 관계자는 “전체 건수가 증가한 것은 통신수단이 다양화하고 가입과 해지가 빈번해진데 따른 것”이라며 “감청 관리 대상사업자를 현재 63개에서 100개 사업자로 늘리고 수사기관 등이 1만여개의 구내통신 설치사업장에 대한 감청협조 요구시 사전에 통신사업자에게 허가서를 제출하도록 관련 지침을 개정했다”고 밝혔다.
이상연기자
kubrick@hk.co.kr
■인터넷·휴대폰 감청 어떻게
상반기 감청 및 통신자료 조회 내용 가운데 인터넷 e메일과 이동전화의 음성사서함ㆍ문자메시지에대한 감청이 크게 늘어나 눈길을 끌고 있다.
수사기관이 영장을 받아 실시하는 ‘e메일 엿보기’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97건보다 90.7%나 늘어난185건, 이동전화의 음성사서함과 문자메시지에 대한 감청은 32% 늘어난 169건으로 집계됐다.
e메일 감청영장이 발부되면 메일 서비스 제공업체는 대상자의 메일을 모두 복사해 수사기관에 일괄 제공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수시로 전달(포워딩)하는 방식으로 통신 내용을 제공한다.
CDMA방식 이동전화는 음성통화의 경우 감청이 불가능하지만 음성사서함과 문자메시지는 감청이 어렵지 않다.
음성사서함은 녹음 메시지를 별도 장비로 관리하기 때문에 수사기관의 요청에 따라 전체 녹음 내용을 테이프에 담아 제공하며 문자메시지의경우 통신업체의 SMS(단문메시지 서비스)서버에 남아있는 문자 내역을 프린터로 출력해 제출한다.
정통부측은 “통신사업자들이 지난해 6월까지는 e메일과 음성사서함 감청 대상자의 비밀번호 자체를 수사기관에 제공해오다 무리한 조치라는 지적에 따라 전체내용만을 제공하는 방법으로 변경됐다”고 설명했다.
이상연기자
kubr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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