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의 패전국 일본을 국제사회에 복귀시킨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이 체결 50주년을 맞아 다시 역사의 전면으로 끌려나오고 있다. 특히 시카고에서 6일 일본의 전쟁배상의무 종결을 전면 부인하는 집단소송이 제기되면서 조약의 정당성, 해석에 대한 논란이 본격 점화했다.1951년 9월 8일 미국의 주도로 연합국 47개국이 일본과 맺은 이 조약은 서방 역사가로부터 ‘관대한 평화’라는 별칭을 얻어왔다.
1차 대전후 체결된 베르사이유 강화조약이 독일에 가혹한 배상을 부과함으로써 나치즘의 대두를 불렀다는 이유로 일본에 대해 선전쟁배상의무를 축소, 종결시켰기 때문이다. 조약의 배경에는 한국전쟁 발발후 일본을 하루빨리 반공전선의 대열로 복귀시켜야 한다는 미국측의 필요가 깔려 있었다.
하지만 강대국의 논리로 강제된 ‘미완의 평화’는 오늘날까지 후유증의 꼬리를 끌고 있다. 8일 콜린 파월 미 국무부 장관과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일본 외무성장관 등이 참석, 50주년 기념식이 열리는 샌프란시스코 전쟁기념 오페라극장 밖에서 아시아계 인권단체와 미군 전쟁포로 및 재향군인회 등의 대규모항의 시위가 벌어진다.
일본이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일본의 전쟁배상책임은 종결됐다”며일본군 군대위안부, 강제노역자, 전쟁 포로 등 전쟁 피해자들의 과거 청산 요구를 거부해왔기 때문이다. 일본 법원도각종 소송에서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따라 개인의 전쟁배상청구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판례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조약체결의 막후 거래가 공개되면서 ‘샌프란시스코체제’는 근간부터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4월 미 국무부 비밀문서가 해제되면서 미국과 일본은 조약서명을 거부하는 네덜란드 측에 개인의 배상청구권을 인정하는 각서를 보냈음이 드러났다.
네덜란드 정부는 당시 인도네시아에서 일본군에게 피해를 본자국민을 대리해 소송을 제기, 1956년 1,000만 달러의 배상금을 받아냈다. 미국의 비영리 연구단체 ‘뉴아메리카파운데이션’의 스티브 클레먼스 부소장은 최근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일본은 55년 전쟁 피해 배상을 요구하는 버마에 기업투자 등의 형태로 2억5,000만 달러를 제공하기로 했으며 스위스와도 전시 불법행위 배상 조약을 체결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조약 26조가 “조약이 정한 것보다 더 큰 이익을 그 국가에 부여하는 평화처리 또는 전쟁배상청구권 처리를 할 때는 그와 동일한 이익을 조약 당사국에 미치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밀약을 통한 개별배상 사례가 드러나면서 전후 배상청구는 조약 체결과 함께 완전히 종결했다는 미일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문제제기가 잇따르고 있다. 마이크 혼다(민주ㆍ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을 비롯한 미 의원들은 이 조항을 사실상 개별배상을 허용한다는 의미로 해석한 ‘전쟁포로 정의법안’을 상정, 통과를 추진중이다.
독일 정부와 기업이 50억 달러의 기금을 조성해 2차 대전 당시 나치정권의 강제노역 동원 유대인과 동유럽인들에게 최근 보상을 시작한일도 ‘도의적인 책임론’을 바탕에 깔고 있는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배상의무에 대한 미국 정부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미 캘리포니아주법원도 지난해 “조약 26항의 적용은 미군 포로등 원고들이 아니라미국 정부가 판단할 문제”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강제노역 피해자들이 제기한 22건의소송을 기각했다.
지난해 기밀해제된 국무부 분서에 따르면 한국은 조약체결 당시 전승국 일원으로 명기됐다가 요시다 시게루 일본 총리가 존 덜레스 국무부 장관에게 강력히 반대하는 바람에 조약에 참여하지 못했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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