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애인더스 이용호(李容湖) 회장이 자신이 설립한 구조조정전문회사(CRC)를 통해 자금을 횡령하고, 주가조작으로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긴 사실이 드러나면서 CRC가 ‘머니게임의 온상’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정부가 외환위기직후 쏟아지는 부실기업을 정리하기 위해 미국식 벌처펀드를 본따 집중 육성한 CRC가 당국의 감독 부재로 부실기업을 오히려 확대 재생산하고, 선량한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초래하고 있는 셈이다.
■머니게임으로 치닫는 CRC 시장
CRC는 부실기업을 인수, 재무구조개선ㆍ인력조정ㆍ영업력제고ㆍ브랜드교체 등으로 기업가치를 올린뒤 매각하는 것이 본연의 업무다.
그러나 업계에 따르면 부실기업 정상화에는 1년6개월~3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하고, 성공확률도 낮아 주가를 띄운뒤 차익을 챙기는 손쉬운 돈벌이 유혹을 떨칠 수 없고, 아예 이를 목적으로 설립된 경우도 허다하다.
지난달말 CRC인 S인베스트먼트는 상장사인 대한방직의 시세를 조정한 사실이 금감위에 적발돼 검찰이 조사에 나섰다.
이 회사김모 대표는 57차례에 걸쳐 고가 매수주문 등의 방식으로 주가를 조작했고, 이 과정에서 소액주주들을 끌어들이기도 했다.
지난달초 CRC인 K사는 상장사인 E사에 투자한 뒤 10여일만에 투자지분의 80%를 처분, 80여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겨 소액투자자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결국 취득ㆍ등록세감면 등 정부의 합법적인 지원까지 받는 작전세력으로 전락한 셈이다.
부실기업 대주주가 부실을 순식간에 털기위해 페이퍼컴퍼니 형식으로 CRC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최근 총 부채 500여억원중 350여억원을 탕감받은 Y기업의 경우 채무조정을 주도한 모 CRC가 Y사 대주주인 L씨가 차명으로 설립한 회사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L씨는CRC를 통해 채권자들을 설득, 부채를 탕감하고 다시 출자전환을 통해 경영권도 유지한 것이다.
■감독 부재의 결과
부실을 털어내고 클린 컴퍼니로 만든 성공사례도 있다. KTB네트워크는 2004년 화의를 벗어날 예정이었던 ㈜세진(현 세닥)의유상증자에 183억원을 투입, 경영을 정상화시켜 230억원의 채무를 전액변제하고 화의절차를 종결했다.
CRC인 큐캐피털이 최근 국내외에 매각한유원건설, 대성목재, 동성철강 등도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그러나 현재 85개 CRC중 정상적인 구조조정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곳은 20여개에 불과하다는 것이 업계 분석.
산자부 조사에 따르면 CRC중 투자실적인 전무한 업체가 50%(작년말 기준)에 달하고, 투자실적도 1조8,000억원(713개 부실기업 대상)에 육박하지만 대부분KTB네트워크 한국기술투자 등 대형 5개사의 설적이다.
문제는 등록기준도 지나치게 낮고, 감독도 없다는 것. 큐캐피털 유종훈(柳宗勳) 사장은 “최소자본금 기준이 30억원에 불과해 1,2개 업체에만 투자를 해도 금새 자금부족현상을 겪게 된다”고 말했다. 당연히 기업 정상화보다 회수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영업규제가 전무하며, 1년에 한번씩 투자실적을 산자부에 보고하면 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85개 CRC중 산자부 실사를 받아본 업체는 한군데도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사채업자들이 전직 증권사 직원들을 고용, CRC를 설립해 불법자금 양성화수단으로 이용된 사례도 많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산자부 관계자는 “감독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라며“늦어도 내년부터 관련 법을 개정, 최소자본금을 50억원으로 상향조정하고, 현장방문 등의 실사를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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