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니체의 ‘낚시바늘’에 걸린 젊은 철학자가 단단하고 아름다운 니체 해석서를 썼다. 고병권(30ㆍ수유연구소+연구공간 ‘너머’ 회원)의 ‘니체,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은 독자로 하여금 매력과 질투를 동시에 느끼게 하는 책이다.
숫자 ‘천’은 다양성과 차이를 가리킨다. 니체는 모든 사물이 지닌 ‘천 개의 주름’을 ‘천 개의 눈’으로 바라보고 ‘천 개의 길’을 거쳐 ‘천개의 숨겨진 섬’에 이른다.
니체라는 ‘천 개의 주름’을 정확한 지도로 완성한 지은이의 사고력은 튼튼하고 치밀하다. 덕분에 독자는 미로를 헤매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그의 문장은 질투를 불러일으킨다. 두 개만 골라보자.
“철학이 하나의 통치 수단으로 전락할 때 사유에 대한 삶의 복수가 시작된다. 이제 삶은 새로운 사유의 탄생을 가로막는 거대한 수렁이다.”
“누구도 자신의 머리카락을 잡고 무게를 달아 볼 수없으며, 누구도 자신이 서 있는 지반의 무게를 알 수 없다. …니체는 철학 바깥에서 철학의 무게를 달아보고 있는 철학자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지은이가 자신만의 니체를 ‘창조’한데 있다. 친절하고 겸손하게, 그러나 열렬하게 니체를 설명하고 옹호하면서, 그를 통해 진리와 도덕, 정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니체 비판은 단 한 구절도 없다. 오히려 객관성이나 비판적 거리란 사랑 능력을 상실한 학자들의 불임증이라고 공격한다. 그는 분명 니체의 낚시바늘에 걸렸다. 싱싱하게 펄떡이는 물고기가 보인다. 우람한 월척은 아니지만, 힘차고 멋진 물고기다.
그는 니체의 단어를 빌어 “모든 책들이 ‘망치’가 되거나 ‘다이너마이트’로 사용되기를 바란다”고 썼다. “저기 니체라는 화살통에 천 개의 화살이 들어있다! 저기 니체라는 이름의 다이너마이트들이 널려 있다!”고 흥분하면서.
서문의 마지막 문장은 좀 더 차분하게 독자를 유혹한다. “모든 책들은 동료를 구하는 몸짓이다”라고. 이 책은 니체와 그의 친구인 지은이에게 많은 동료를 데려다줄 것 같다. 망치 또는 다이너마이트로 무장한 많은 동료들을.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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