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9월7일 멕시코의 화가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가 66세로 타계했다.하리스코주(州)의사포틀란에서 태어난 오로스코는 어려서 폭약 사고를 당해 왼팔을 잃었다.그러나 그는 오늘날 디에고 리베라, 다비드알파로 시케이로스와 함께 멕시코 벽화 운동의 3대 거장으로 꼽힌다.
1920년대 멕시코에서 일어난 벽화 운동은 멕시코 혁명(1910~17)의 급진주의적 이념을 형상화하고 선전하는 정치 예술이었다.
이 벽화 운동은 라틴 아메리카의 예술 운동으로 그치지 않고 제3세계 지역과 미국 화단에 까지 영향을끼쳤다.
80년대 한국에서 흥성한 민중미술 운동으로서의 벽화 운동도 멕시코 벽화 운동을 한 자양분으로 섭취했다고 할 수 있다.
혁명 정부의 후원을 받았던 멕시코 벽화 운동의 정치 편향은 순수한 예술의 관점에서는 마땅찮을 수도 있겠지만, 혁명 이전의 멕시코가 대토지 소유자와 외국 자본에 장악된반(半)봉건-반식민지적 사회였다는것을 생각하면 그것을 예술의 확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벽화의 거장들 가운데서도 특히 오로스코의 경우가 그랬다.
오로스코는 자신의전생애를 멕시코 혁명의 여파 속에서 살며 그 혁명을 보위하기 위해 애썼지만, 세 살 아래인 리베라나 13살 아래인 시케이로스와는 달리 혁명의 파괴적측면에도 주목했다.
그는 혁명 기간에 목격한 혁명가들의 위선과 무고한 민중의 피흘림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확고한 반파쇼 입장을 취하면서도공산당과도 거리를 두었다.
그의 눈길이 닿은 곳은 커다란 해방적 이념이라기보다는 구체적 상황 속에서 민중이 겪는 고통들이었다.
그의 대표작들인미국 뉴햄프셔주 다트머스대학 도서관 벽화나 멕시코 과달라하라 주지사 저택 벽화는 짙은 민중지향성 위에 얹혀 있는 미적 섬세함을 보여주었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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