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곧 퇴임합니다. 김윤식 서울대 교수도 다음 주에 정년퇴임고별 강연을 앞두고 있습니다.문학과지성사 대표직을 지난 해 물러난 평론가 김병익 인하대 교수는 28년 만에 ‘한국문단사’를 재출간했습니다.
이들을 보며 과연 한 시대가 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을 어쩔 수없습니다. 지난 해 소설가 황순원 선생에 이어 미당 서정주 시인이 타계했을 때와는 또 다른 감회입니다.
1956년 이어령 교수가 스물두 살의 나이로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라는 평론을 발표하며 등단했을 때, 그는 황순원과 서정주를‘현대의 신라인(新羅人)들’이라고 묶어 비판했었습니다. 또 다른 한 세대가 물러납니다.
“더 무엇을 말할 것인가. 여기 실린 소설들은 이미 우리 현대문학의 고전이다”라고 이 교수가 1970년대 나온 소설가 김승옥의 작품집 날개에 쓴 단정적 촌평을 보고, 도대체 어떤 소설이길래… 하고 눈을 부라리며 김승옥을 읽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40여 년 간 수많은 작가들을 발굴하면서 한국문학을 살찌워온, 이 교수와는 대조적으로 논쟁을 즐기기보다는 “비평의 본질은 교묘하게 작품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이라고 늘 강조하던 김윤식 교수의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30대의 젊은 기자 시절 일제하 문인들의 저항과 훼절을 살피며 “그들의 잘못까지도 끌어안을 수 있었으며, 개인과 집단의 역사가 빚는 가혹한 시련을 이해할 수도 있었다”는 김병익 교수의 ‘한국 문단사’는 기자의 일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문학 혹은 책과 연관된 인생이라는 공통점 말고 이들에게는 어떤 삶의 공통분모가 있을까요. 이 교수는 그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전세계 지식인 가운데 나(‘우리’라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같은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세요. 70평생에 300년 걸려야 겪는 시대를 다 겪었지요.
농경사회,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화시대까지…” 그렇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인생으로, 압축된300년 세계사를 살았습니다.
“문학 속에 인류의 길이 있다고 믿었다”는 김윤식 교수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들은 역사에 인생을 걸고 고민해 왔습니다.
그들의 퇴임이 퇴장이 아니라 뒷 세대들에게, 문학과 책으로 대표되는 인류의 정신사를 되새기게 하고 이어가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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