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남북통일축구 경기가 끝난 90년 10월 24일 아침 한국일보 사회면에는‘北기자4명 한밤 本社기자집 방문 1시간’ 제하의 특종이 사진과 함께 실렸다.“23일 중앙통신사 김광일기자등 기자 4명은 숙소인 워커힐호텔을 떠나 천호1동 辛允錫기자 집을 방문, 서울의 4박5일, 통일문제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로 시작하는 이 기사는 남북교류사에 상당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90년 9월4일 서울에서 시작된 1차 남북고위급회담은 92년 2월18일 평양의 6차회담에서 역사적인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에 이른다. 이 회담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남북의 열광 속에 열렸던 통일축구가 특종의 무대였다. 당시 경찰출입이던 기자는 북한측 숙소인 워커힐 호텔 외곽에서 ‘돌발상황’에 대비하며 하릴없이 낮밤을 보내는 임무였다.
소위‘비표’가 없어 호텔 내부에 들어가 볼 수도 없는 처지였지만, ‘잠입과 회합’을 시도하고 북한기자단의 서울나들이에 따라붙으며 얼굴을 익혔다.
마침내 북한기자단은 “평범한 남조선 가정집을 가보고 싶다”고 말을 걸어왔고, 나는 “저희집이 숙소에서 가깝고 평범한 살림이니 가보자”고 제안했다. 예나 지금이나 남북 행사는 남북간은 물론,북측 참가자 및 남측 참가자 내부에서 세밀한 부분까지 사전 합의를 보고 한치의 어긋남 없이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 ‘돌발초청’은 남북 당국자와 기자의 현장 협상을 거쳐 운좋게 성사됐다. 북한기자단은 한국일보 취재차를 타고 우리 집에 와 유쾌한시간을 가졌다. 타사 기자들이 이삿짐용 곤돌라를 타고 올라와 창밖에서 취재를 시도하던 기억이 난다.
북한기자단의 표현대로 ‘비공식 개별초청’이었지만 분단 이후 북한 주민이 처음으로 남한의 가정집을 방문한 것이었다. 북한 기자단은 “이런 만남은 처음이니까 서로 특종”이라고도 말했다. 이런 대화는 그대로 보도됐고, 북한기자단은“사실보도가 좋았다”고 평했다. 남북한 당국과 남측 초청자, 북측 참석자가 모두 만족하는 결과가 나온 셈이다.
기자의 집에 왔던 북한 기자들은 고위급 회담이 진행되던 중에 한두 번 더 서울에서 만났고 몇 해 전에는 중국 베이징(북경)에서 열린 한국일보 후원의 학술행사에 그 중 한 명이 참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들의 소식도 남북관계가좋으면 듣게 되고 얼어붙으면 끊어진다.
최근 평양에서 열렸던 8ㆍ15민족통일대축전 참석 인사들의 언행을 빌미로 나라가 시끄럽다. 남북간 그만한 규모의 행사에서 그 정도는 있을 법하지 않은가. 다만 이산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평양을 가는 ‘선택받은 사람들’은 사려깊게 처신해야 마땅하다.
통일 축구의 열기 속에 체결된 남북간 화해와 협력 및 교류를 위한 세부사항을 망라한 기본합의서는 아직도 이행되지 않고 있다. 남북관계는 정략이 아니라 민족의 공동이익과 평화정착이라는 대승적 목표로 접근할 때만 진전이 가능하다.
신윤석 사회부차장
ysshin@hk.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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