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숲을 지나왔고 아직도 지나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나를 움직이지 않은 책이 어디 있으랴. 울면서 웃으면서 옷깃 여미면서 읽어왔다.하지만 책을번역하고 쓰는 사람에게 ‘나를 움직인 책’ 말하기는 고통이다. 정말 좋다 싶은 책은 내가 찾아서 번역했고, 모름지기이래야 한다 싶은 책은 내가 썼으니… 제외.
반쯤은 우리 글로, 나머지 반쯤은 외국어로 읽었으니, 외국어로 읽은 것도 제외. 근 40년 동안 읽어왔으니 너무 오래 읽은 것도 제외.
최근에내가 손때를 묻히고 있는 책은 유종호 교수의 ‘시란 무엇인가’이다. 아, 숲 속에서 만난 빈터.
나는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말하기보다는 사랑하기를 더좋아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말하기보다는 그냥 산다. 시도 그렇다.
‘시란 무엇인가’를 말하기보다는 시 읽는 것을더 좋아한다. 하지만 쓰고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이는 그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쓰는 이는 무엇을 쓰는지알고 써야 한다. 저자는 쓰고 가르쳐도 깊이 쓰고 깊이 가르치는 이다.
문학 경험은 다른 예술 경험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 행복 체험인데 우리 사이에서그 높이와 깊이는 위엄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시를 쓰는 이들이 깊이 배우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책을 읽기 전에는 문학 경험이 행복 체험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시란 무엇인가’ 읽기가 바로 행복 체험이었다.
저자가 추려내어 글 중간중간에 박아놓은보석 같은 예문 읽기의 행복 체험, 예문에 대한 저자의 생각 읽기의 행복 체험, 내 생각을 거기에다 견주는 행복 체험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도‘시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대한 직설적인 답안’은 없다. ‘주체적인독자들은 자기 몫의 정의나 결론을 타자에게 위임하거나 양도하지 않을 것’이기때문이다.
저자가 뒤늦게 시를 쓰는 까닭을 알겠다. ‘시란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들고 백척간두에 서지 않았다면 그는 시를 쓰게 되지 않았을것이다.
이윤기 소설가ㆍ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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