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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서울 구치소앞의 세계 언론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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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서울 구치소앞의 세계 언론인들

입력
2001.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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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I(국제언론인협회) WAN(세계신문협회) IFJ(국제기자연맹) 대표들이 서울로 몰려오고 있다. 언론사 세무조사와 언론사주 구속에 따른 한국 언론 상황을 조사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그들은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인 김병관동아일보 전 명예회장,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을 면회하는 등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군사독재아래 기자로 일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그 시절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한국의 독재 권력을 비판하고, 인권과 자유를 문제 삼는 선진국 언론을 마음속으로 의지하고 부러워하면서 한편으로는 수치심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구치소 앞에 서있는 세계 언론인들의 사진을 보며 지난 날의 열등감이 되살아 나는 것을 느낀다.

2001년 한국의 언론은 일찍이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시련을 겪고 있다. 우리 언론사에 유례가 없을 뿐 아니라 세계 언론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사태가 한국 언론계를 덮쳤다.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가 4개월동안 23개 언론사를조사했고, 검찰은 두 달 이상의 수사를 거쳐 6개 언론사 법인과 관련자 13명을 기소했다.

그 일련의 과정은 강력범 일제 소탕전을 방불케 했다. 3개 언론사 대주주가 구속되고, 동아일보의 대주주 부인이 투신자살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2월8일 국세청 조사가 시작된 이래 바람 잘 날 없는7개월이 흘렀다.

’명백한 언론탄압’이라는 견해와 ‘법앞에 성역 없다’는 견해가 맞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언론사들은 저마다 입장이 다르고, 국민 사이에서도 양론이 팽팽하다. 국제 언론단체들도 의견이 갈려있다.

IPI와 WAN은 ‘언론탄압’이라는 시각이고, IFJ는 ‘세무조사가 언론개혁을 촉진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번에 온 조사단들은 각기 여러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겠지만, 지금까지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는 결론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양분된 시각은 나름대로 근거와 정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느쪽도 주장을굽힐 것 같지 않다. 이 갈등을 수습하려면 양측 모두 자신의 기본입장을 접어둔 채 좀더 열린 시각을 가져야 한다.

평양축전에서의 불상사로 인한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 ‘나무를 보지말고 숲을 보자’라고 제안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 말이 이 경우에도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부가 먼저 숲을 보라고 제안하고 싶다. 언론사 세무조사와 법적처리는 정당하다는 원론에서 한단계 올라갔으면 한다. 이번 조치가 진정한 언론개혁으로 이어지기까지의 긴 과정과 세계에 미친 파장을 바라봐야 한다. 가쁜 숨을 고르고 심호흡을 하는 여유를 찾아야 한다. 그 첫 조치로 불구속 재판을 추진했으면 한다.

이제야 언론사 대주주 구속에 반대하는 것은 ‘비겁한 뒷북 치기’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구속 전에 이런 주장을 하지 못한 것은 언론이 그 동안 다른 피의자들의 구속에 얼마나 문제의식을 가졌던가 라는 자격지심 때문이었다.

숱한 구속 남발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더니 언론사주가 무슨 특수 신분이냐는 저항에 어떻게 대답할지 궁색했고, 탈세를 중벌로 다스려 온 관행에도 신경이 쓰였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 서울구치소 앞에 서있는 국제 언론단체 간부들의 사진을 보면서 참담함 을 느낀다. 언론사태는 이제 법정으로 넘어가 새 국면을 맞고 있다. 그 동안 20여 일의 구속상태에서 검찰수사에 협조해 온 언론 사주들에게‘도주와 증거인멸의 위험’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구속수사’로정부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려 했다면 기소를 계기로 생각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언론사주 3명이 구속상태라면, 최대의 영향력을 가진 두 신문의 사주가 동시에 구속됐다면, 세계의 양식 있는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다. 누가 뭐래도 이 정부는 떳떳하니 물러설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한 정부의 문제가 아니다. 이 나라가 입을 이미지 손상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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