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철기자의 경제 업그레이드]정부가 수십년간, 아니 이 땅에 미작(米作)역사가 시작된 이래 불문율처럼 여겨져왔던 쌀 증산정책을 포기한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줄어드는 소비, 늘어나는재고, 그래서 이젠 풍년도 꼭 반갑지 만은 않은 현실에서, 더 이상 쌀 생산을 늘리는 것은 정부에겐 재정부담만 초래하고 농민살림에도 도움이 되지않을 것이란게 증산정책을 버린 이유다.
사실 쌀만큼 복잡한 재화(財貨)는 이 세상에 없다. 이처럼 경제논리와경제외적 요소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상품도 없다. 그래서 쌀은 언제나 뜨거운 감자다.
오직 경제적 득실만 따진다면 ‘쌀쇄국정책’은 잘못된 것이다. 국내 쌀값은 국제가격보다 6~8배나 높다. 쌀의 시장빗장을 완전히 열어놓는다면 소비자들은 훨씬 싼 값에 밥을 지어 먹을수 있다.
야박하게 얘기하자면 쌀시장을 닫아놓고 있으면 있을수록 소비자들은 손해를 보는 셈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쌀 시장완전개방시 생산자(농민) 잉여는 5조2,681억원 감소하지만 소비자 잉여는 5조2,833억원이 증대돼, 경제전체로는 소폭이나마 금전적 이득이 생긴다는분석이다.
하지만 경제논리로만 풀 수 있었다면 애당초 쌀은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국민생존과 직결된 주식(主食)을 외국메이저의 손에 맡길 수 없다는 식량안보론, 농민을 도시빈민으로전락시킬 것이라는 농촌파괴론, 재고가 좀 남아돌아도 예기치 못한 기상재해나 장차 통일후 식량사정까지 감안해야 한다는 장기수급론…. 정부의 증산포기방침에농민 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도 이런 맥락이다.
2004년이면 국내 쌀 시장개방 유예조치가 만료돼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새로운 협상이 시작된다. 그러나쌀 시장개방 논란은 굳이 2004년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바로 내년 대선레이스에서 최대 쟁점으로 부상할 것이다. 과연 여야 후보들은 쌀 문제에대해 어떤 공약을 내걸 것인가.
참고로 1992년 대선 당시 ‘쌀시장개방불가’는 여야의 일치된 공약이었지만 이듬해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 선진국 힘의 논리에 밀려 쌀 수입은 부분 허용됐고, 결국 대선공약을 어긴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은 대국민사과와 함께 협상대표였던 농수산부장관을 희생양으로 경질했던전례가 있다.
이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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