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발표한 ‘쌀 산업 중장기 대책’의 핵심은 쌀 증산 정책을 포기하고, 추곡 수매 제도를 전면 개편하겠다는것이다.수급 불균형으로 쌀의 공급 과잉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데다 시장 추가 개방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건국 이래 계속되어온 ‘주곡 자급을 통한 국민식량의 안정적 공급’이란 양곡 정책이 막을 내리게 됐다.쌀 산업이 근본적인 변화를 맞게 된 것이다.
쌀을 둘러싼 국내외적인 환경 변화를 보면 이 같은 정책 전환은 불가피하다. 현재와 같은 쌀 값과보조 정책은 생산자와 소비자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고, 앞으로 개선될 전망도 거의 없다.
그러나 특히 우리의 경우 쌀이 지니는 ‘특수성’과 ‘상징성’을 고려하면, 이번 정책 전환은 너무급속히 이루어져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쌀은 일반 상품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적인 성격이 강한 복합재다. 쌀이 부족해 큰어려움을 겪었던 시절이 그리 먼 옛날도 아니고, 증산에 의한 저미가 정책은 압축성장을 가능케 했던 주요 요인이었다. 쌀을 단순히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할 수는 없는 이유다.
이번 대책이 자칫 정부의 쌀 농사 포기 유도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증산위주의 쌀 정책이 한계에 왔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충분히 예견됐다.
그런데도 그 동안 정부는 무엇을 했길래 지금에 와서야 급 전환을 하느냐는것이다. 정부는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쌀 증산을 강조했다. 새만금 사업이 단적인 예다.
이번 대책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도 사안의 중요성에 비해 졸속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부는 대책 전환으로 인한 농민들의 피해를 최대한 보상해주겠다고 한다. 재원 마련도 문제지만, 지금까지의 정부 행동이 정책에 대한 신뢰성을 크게 떨어뜨린 상태여서 얼마나 농민들의 불안을 덜어줄지 미지수다.
상황이 불리해지니까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겠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 결과 쌀 산업은 이제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비 경제적’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을까 걱정이다.
정부는 이 같은 여러 상황을 고려해 이번 정책의 당위성을 우선 농민들에게 충분히 알리고 이해를 구해야한다.
급하다고 서둘러 밀어붙여 해결될 성격은 아니다. 예상할 수 없는 기상이변과 통일 이후까지를 고려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적정 생산량’을 유지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농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각오를 정부는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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