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암살범 안두희가 미군 정보요원이었다고 한다. 민족사의 흐름을 바꾼 격동기를 떠올리지만, 미국의 개입 의혹을 새삼 천착하는 것은 부질없다. 그러나 백범의 민족 노선과 맥이 닿는 DJ 햇볕 정책이 통일부 장관 해임 건의로 저격 당한 날, 52년 전 백범 암살 배후가 다시 거론된 것은 공교롭다.방북단 사건을 빌미로 햇볕 정책을 전복하려는 시도에 미국이 작용한다는 음모론이 나온 것도 우연치 않은 일이었던가 싶다. 정보장교 출신에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JP가 햇볕 저격에 총대를 멘 것조차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음모설을 논할 뜻은 없다. 다만두 사건 배후에 미국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바탕을 살피려는 것이다. 우리의 민족 문제는 국내 정치 소용돌이보다 국제 정치의 조용한 흐름에 비춰보는 것이 올바른 이해의 지름길일 수 있다.
백범이 저격 당한 1949년 6월은 미국이 한반도와 일본을 놓고 소련과 대결 정책을 굳힌 시기다. 2차 대전 직후 맥아더와 많은 전략가들은 일본의 영구 비무장 중립화를 구상했다. 이들은 미군이 일본에서 철수하면, 소련도 한반도의 민주 선거에 의한 중립 정부 수립에 동의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런 구상이 무산된 뒤 미국은 소련이 일본과 서유럽을 공격하는 3차 대전을 도발할 위험이 임박했다고 판단, 일본을 대 소련 전진 기지로 삼았다. 당시 정책 논쟁에 참여, 소련과의 타협을 주장했던 비판적 학자들의 회고다.
미국의 선택은 소련에 전략적 불리를 강요한 것이었다. 소련은 그 보상(補償)으로 한반도 입지를 굳힐 필요를 느꼈고, 결국 북한의 남침을 승인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 이들 학자들의 분석이다. 미국은 북한의 남침을 소련의 세계 적화 음모로 규정,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소련의 이념 공세를 군사적 위협으로 오해,과장한 편견일 뿐이라는 것이 냉전과 한국전의 연원에 관한 미국 책임론이다.
이런 미국 책임론에서, 소련을 지레 사악한 존재로 인식하고 규정한 것이 타협과 포용을 국내 정치적으로도 위험한 선택으로 만들었다는 지적은 흥미롭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한반도와 미국과 일본이 얽힌 전쟁과 평화의 곡절은 묘하게 닮은 꼴인 듯 해서다.
50년 전의 악역 소련은 퇴장한대신, 북한과 중국이 미국의 전략 인식에서 다시 사악한 존재로 부각됐다. 미국은 이를 명분으로 냉전적 대결 구도를 새롭게 복구하고 있다. 그 흐름속에 일본의 전진 기지 역할은 강화됐다.
재래식 군사 대국화를 넘어 탄도 미사일 능력까지 갖춘 일본의 표적은 중국일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일본정치의 급속한 우경화는 한반도를 민족과 이념의 두 갈래 선택의 기로에 다시 처하게 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백범 암살과 햇볕 저격을 나란히놓고 보는 것은 시대착오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민족 문제는 늘 주변 세력의 전략 인식과 이해가 지배해 왔다. 그 참담한 결과와 교훈을 기억한다면,우리 사회가 다시 주변 정세 변화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어리석음은 경계해야 한다.
전쟁과 평화는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특히 평화의 선택은 적을 향한 정서가 지배하며, 따라서 전쟁의 선택보다 복잡하고 어렵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는 실제적 위험 없는 전쟁상태인 남북 대치에 자족하려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JP처럼 한국전 참전을 자랑하는 것은 존중하지만, 이를 햇볕 저격의 명분으로 삼을 시대는 지났다. 백범 암살과 뒤이은 전쟁에 외세가 책임이 있다면, 이제라도 민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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