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 피오리나(46) 휴렛 팩커드(HP) 회장의 대도박이 성공할 수 있을까. HP의 컴팩 인수로 탄생할 세계 최대 PC 업체인 ‘뉴 HP’의 총수에게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컴팩 인수는 퇴출위기에 몰린 피오리나가 던진 회생의 승부수였다. 합병이 전격발표되기 직전 업계에선 HP가 PC분야에서 철수하고 그도 차기 주총에서 해임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불황은 도전인 동시에 새롭게 도약할 기회”라며 매출규모 870억달러의 글로벌 테크놀로지 기업을만들어내 위기에 맞섰다.
그런데도 시장은 피오리나의 장담을 믿지 않고 있다. 4일 뉴욕 증시에서 HP의 주가는 18.70%, 컴팩은 10.28%나 떨어졌다. 이에 따라 8월 31일 종가를 기준으로 한 양사의 빅딜 규모도 당초 250억 달러에서203억 달러로 줄어 47억 달러가 날아갔다.
투자가들은 “패배자 둘이 합친다고 승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만취한두 술꾼이 서로 부축하고 있는 꼴”이라는 등 신랄한 태도로 등을 돌렸다.
분석가들도 “열악한 PC 시장에서 출혈 경쟁을 감수한 합병은 오히려 수익성 악화를 낳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게다가 1만3,000명을 감원해야 하는 후유증과 함께 IBM, 델 컴퓨터 등 튼튼한 기업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할 입장이다.
피오리나는 “25억 달러의 시너지 효과를 거두기 전까지 연간 수익 5% 감소를 감내할 각오가 돼 있다”면서여전히 자신감을 버리지 않고 있다. 지난달 3ㆍ4분기(5~7월) 순익이 동기대비 90%나 줄어들어 사퇴압력에 시달릴때도 그는 도리어 이사진의 ‘충성 맹세’를 받아내 정면돌파 했다.
스탠퍼드대에서 중세사와 철학을 전공한 피오리나는 MIT에서 공학석사, 메릴랜드에서 MBA 과정을 밟은 뒤 ‘경영인’으로 변신했다. 이후 1998년부터 3년 연속 포천지가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기업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99년 7월 연봉 9,000만달러로 HP의 CEO로 영입된 뒤에는 “해보지도 않고 노(NO)하는 사람을 가장 경멸한다. HP의 좋은 점만 남기고 모두 바꾸자”며 83개 제품사업부를 12개로 줄이는등 과감한 실천력을 발휘해 왔다. 그러나 실패를 모르던 피오리나도 인생 최대의 시련을 맞고 있는 것 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이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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