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잔뜩 들고 퇴근할 때면 한 수필가의 말이 문득 생각난다. “바이올린을 든 여성 보면 바이올린 들어주고 싶은데 책 잔뜩 든 여성을 보면 책 한 권 더 얹어주고 싶다.”학자가 되려는 여성들은 공부기간 중 들은 차별적인 말을 가시처럼 기억한다. 한여름 참고문헌 찾으러 도서관을 헤매다 남학생 만나면 “더운데 집에서 시원하게 수박이나 잘라먹지!” 빈정거리고 석ㆍ박사 끝내고 대학에 자리 찾으면 지도교수조차 “뭘, 살 만하면서…?” 한단다. “교수를 집안형편이 어려운 순서대로 뽑아야 하는가?” 대들 판이지만 대학은 순종적인 사람을 좋아하니 그럴 수는 없다.
서울대 여교수회가 여교수 임용목표제를 건의하고 나섰다. 서울대의 여학생비율은 현재 30%나 되지만 여교수비율은 6.9%에 불과한데 남녀평등실현, 잠재인력활용이라는 점에서 5년 안에 여교수비율이 10%가 되도록 하라는 건의다.
이 건의를 보도하지 않은 언론은 없다. 90년대 중반께부터 각 대학 여교수가 모인 여교수연합회, 한국여성개발원 민무숙 박사팀의 대학의 남녀교수 불균형현황 등의 논문이 대학의 남녀차별 시정을 요구했지만 언론들은 잠잠했다.
이번에 건의를 한 여교수회장 정옥자 교수의 지명도에, 공부하는 딸들이 늘어나는 데 따른 아버지들의 인식변화에, 여성정치인사회에서 있었던 비슷한 논의 때문인가,여교수 채용목표제 논의는 이제부터 시작일 듯하다. 8일, 여성학회는 여성박사실업실태를 알리고 그 해결을 위한 이론을 제안한다. 우연이 아니다.
많은 언론은 보도에서 실수했다. ‘여교수 임용목표제’ 를 ‘여교수 할당제’라고 임의로 바꿔 불렀다. ‘할당제(quota system)’는여교수의 채용수치를 정해놓아, 남교수지망자를 역차별 할 염려가 있는 데 반하여 ‘목표제(goal system)’는 시간표를 정해두고 여교수 고용기회를 늘이는 것이다. 여교수회, 여성학자, 여성부가 주장하는 것은 목표제이다.
어느 언론도 여교수 비율이 늘어야 할 중요한 이유들을 알리지 않았다. 서울대고대 연세대 법대에는 여교수가 한 명도 없다. 그런데 미국사례를 보면 법대에 여교수가 생기면 여성주의 법학이 등장하는 식으로 학문이 재편성된다. 또 여교수 신규채용이 늘면 여성 종신교수의 수도 늘고 여학생들은 학문에의 투지를 불태우며 해당분야의 고급인력분석이 실시된다.
70년대부터 여교수 채용목표제를 실시중인 미국에서도(www.ed.gov)아직 ‘할당제’와‘목표제’를 혼동하는 사람들은 있다. 여교수가 한 위원회에 소속되어일하면 ‘단 하나’ 위원회 소속으로, 남교수가 그런 경우에는 ‘또하나의’위원회 소속으로 기록된다는 차별사례도(www.ai.mit.edu/people/ellens/Gender/pap/node24.html)숱하다. 서울대 여교수회 건의가 넘어야 할 길은 험난하나 지켜보고 싶다.
박금자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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