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에 비가 흩뿌리더니 날이 밝으면서 거짓말 같이 개었습니다. 문경새재로 오르는흙길은 약간 젖어있었습니다.먼지도 일지 않았고 진창도 아니었습니다. 바라보기 좋은 맑은 하늘만큼 걷기에 좋은 맑은 길이었습니다. 바람에 흔들린나뭇가지가 물방울을 털어냈습니다.
볼에 떨어진 물방울이 생각보다 무척 차가왔습니다. 순간 새삼스럽게 느낍니다. ‘아! 진짜 가을이 왔구나.’
큰 계절이 변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도시 사람들은 계절의 변화에 둔감하다는것입니다. 그냥 4계절로 뭉뚱그리죠.
그리고 그 계절을 감지하는 것도 둔합니다. 싹이 움트면 봄, 휴가철이 다가오면 여름, 단풍이 들어 낙엽이흩날리는 것을 보고야 가을, 연말 보너스가 나오면 겨울…. 뭐 이런 식입니다.
그러나 자연의 흐름은 4계절로요약될 수 없습니다. 더욱 짧은 간격으로 다른 모습이 됩니다. 특히 봄과 가을은 더욱 그렇습니다. 색깔과 모습과 향기가 매일 바뀝니다. 가을이라도같은 가을이 아닌 것입니다.
그 치밀한 시간의 변화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농민입니다. 기상청보다예민합니다. 굳이 달력을 보지 않아도 씨를 뿌리고 거둬야 하는 때를 압니다.
언제 고추를 말리고 장을 담가야 할지 농군의 아낙은 훤합니다. 언제나자연의 변화를 바라보고 살아온 덕분이겠죠.
도시적 메커니즘에 안주해 있는 도시 사람들은 그런 감각을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사각형의 건물에 들어앉아 관념적인 4계절만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냉난방 시설이 철저하고 계절에 맞춰 땅 팔 일이 없는 이들은 계절맹(盲)이 되어버리고말았습니다. 먹고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지만 왠지 슬픕니다.
이 가을에 한 번 고쳐볼까요. 굳이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됩니다.열쇠는 관심입니다. 거리의 나뭇잎, 하늘의 색깔, 구름의 모양 등 무심했던 모든 것에 관심을 보이십시오. 정밀한 계절의 변화가 눈과 마음에 들어옵니다.그 것을 느낄 때마다 마음이 따스해지겠죠.
변화무쌍한 가을 속으로 떠나봅시다.
권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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