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새재(경북 문경시)는 서울과 영남을 잇는 길이었다. 조령산과 주흘산이라는 백두대간의 가파른 두 봉우리 사이로 난 길이다.‘영남’이라는 말은 바로 ‘새재(조령ㆍ鳥嶺)의남쪽 지방’이란 뜻이다. 사람은 물론 물산이 모두 이 고개를 넘어 서울과 영남을 오갔다. 발길이 흔한곳은 사연도 많은 법.
이 언덕길에는 사람들이 엮어낸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새재 나들이는 길손들의 이야기와 손때를 더듬는 여행이다. 더불어그들이 숨쉬던 과거에 젖어보는 타임머신 여행이기도 하다.
새재는 조선 태종이 개척한 길이다. 고개를 사이에 두고 낙동강과 한강의 물줄기가흐른다. 고개를 넘은 사람과 산물은 바로 배에 실려 굽이굽이 물을 타고 서울로, 영남 각지로 운반됐다.
이 중요한 길을 지키기 위해 성을 쌓고세 곳에 문을 달았다. 조선 선조 27년(1594년)에 지금의 제2관문인 조곡관이 세워졌고 숙종 34년(1708년)에 주흘관(제1관문)과 조령관(제3관문)이 들어섰다. 수차례 불에 타거나 비바람에 무너진 것을 1976년부터 복원해 사적 제147호로 지정했다.
백두대간의 다른 언덕길이 대부분 아스팔트로 뒤덮여 있는 반면, 새재의 길은 옛모습 그대로이다. 일제가 서울로 쉽게 들어가기 위해 1926년 이화령이라는 신작로를 옆에 만들며 새재는 옛길이 됐다. 덕분에(?) 살아남았다.
지난 해 이화령고개를 관통하는 터널이 생기면서 이화령이 옛길로, 새재는 ‘원조 옛길’이됐다. 옛길 입구부터 충북 충주시와의 경계에 서있는 제3관문까지 왕복 약 14㎞. 고갯마루에서 충주까지 내려가는길은 거의 폐쇄돼 이제 찾기 힘들다.
오르는 산행은 길이 너무 좋다. 조금 긴 산보로 보면 된다. 흙에 갈증이 난 도시인이라면 천천히 거닐며 그흙기운에 취해봄 직하다.
매표소에서 약 500㎙를 걸으면 성곽과 문이 보인다. 제1관문인 주흘관이다.세 개의 관문 중 제 모습을 가장 잘 지키고 있다.
낯이 익다. KBS드라마 ‘태조 왕건’에서최근에 모습을 보인 까닭이다. 돌림병 때문에 왕건이 견훤에게 무릎을 꿇었던 조물성 전투.
그 전투장면의 배경이 된관문이다. 전투장면에 쓰였던 화차며 군막사 등 소품들이 성문 앞에 아직 진을 치고 있다. 과거로 돌아간 듯하다.
주흘관 뒤쪽 계곡을 지나면 커다란 마을과 만난다. 현대식 마을이 아니라 고려시대마을이다. 제법 규모있는 성이 곳곳에 서있고, 여염집의 초가지붕에는 박이 노랗게 익어간다.
사극 전용 세트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왕건촬영장이다.연인원 3,000여 명이 동원돼 2만여 평의 부지 위에 세 개의 왕궁과 귀족촌, 민가를 세웠다.
7명의 학자가 고증을 했다. 가족 나들이는 물론단체 답사지로도 인기가 높다. TV에서 봤던 모습을 실물로 확인하는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왕건촬영장을 지나면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본격적인 산길이다. 산길이라지만 차가두 대 정도 교행할 수 있는 넓고 평탄한 길이다.
단풍나무, 박달나무, 은행나무, 전나무 등 각종 나무의 가지가 길을 지붕처럼 덮고 있다. 풀냄새,나무냄새가 가득하다. 가을이 깊어지면 이 길은 오색터널이 될 터이다.
원터가 나타난다. 원(院)이란 요즘의 여관. 새재가 워낙 험하고 산짐승과 도적이많았기 때문에 새재를 넘으려던 사람들은 해가 떨어지면 원에 머물며 밤을 보내야 했다.
건물은 모두 없어지고 정사각형 모양의 돌담만 남았다. 지금돌담 안에는 ‘태조 왕건’에서 궁예가 나라를 일으킬 때 머물렀던 군막이 들어있다. 원터를 조금 지나면 주막터. 그 터에 옛 주막을 재현해 놓았다.
이마에 땀이 조금 맺힐 무렵, 시원한 물소리가 들린다. 조곡폭포이다. 실처럼가는 물줄기가 한데 어우러져 떨어지는 조곡폭포는 3단 폭포이다.
길 옆에 바로 있기 때문에 숲 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다. 물소리를 뒤로 하고잠시만 걸으면 제2관문인 조곡관이다. 관문 바로 뒤에 샘물이 있다. 앉아서 목을 축이고 땀을 식힌다.
조곡관에서 제3관문인 조령관까지의 길은 지나온 길보다 조금 가파르고 지루하다.약 3.5㎞로 왕복 2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래서 대부분 조곡관에서 발길을 돌린다. 그러나 내친 걸음이라면 2시간을 더 투자해 보자. 고갯마루의성곽에 올라 조망하는 시원한 풍광이 충분한 보답이 된다.
남북으로 늘어선 연봉들이 눈에 들어온다. 청명한 가을 산책이 완성된다.
▽가는 길
중부고속도로 음성나들목에서빠진 뒤 괴산을 거쳐 이화령터널을 지나거나, 중앙고속도로로 제천까지 간 후 충주-수안보를 경유해 이화령을 지나는 방법이 있다.
이화령 남쪽이 바로문경새재도립공원 입구이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문경행 직행버스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약 3시간 30분 소요.문경읍 시외버스터미널(054-571-0343)에서 문경새재까지 1시간 간격으로 시내버스가 운행된다. 도립공원 입장료는 성인 1,900원, 어린이750원이다. 새재관리사무소 571-0709
▽쉴 곳
인근에 대형 숙박시설은없고 제1관문 입구에 숙박촌이 형성돼 있다. 문경파크관광호텔(054-554-5000)과 문경관광호텔(571-8001)이 비교적 규모가 있는 숙박시설.
새재파크모텔(571-6069), 새재모텔(571-2430), 중앙장여관(571-0502) 등이 깨끗한 장급 여관으로 꼽힌다. 민박집이 많다.
구옥자(571-7701)채홍빈(571-0480) 김옥배(571-4834) 지영국(571-4283)씨 등이 민박을 전문으로 친다.
근처에 있는 문경온천(572-3333)에들러 피로를 풀 수도 있다. 약산성칼슘 및 중탄산천으로 심장병, 관절염 등에 좋다.
▽먹을 것
새재할매집(054-571-5600)은 30년째 관문을 지키고 있는 식당. 한우불고기,산채백반, 송이전골 등 일반적인 음식 외에 염소요리를 한다.
염소고기를 불고기와 사골탕으로 내는데 독특한 양념으로 누린내를 완전히 제거했다. 최근문을 연 새재왕건집(571-8857)은 고기 전문식당.
등심과 불고기, 왕건왕갈비 등이 주 메뉴이다. 400여 명을 수용할 정도여서 단체 여행객에게알맞다.
소문난식당(572-2255)은 이 지역의 개성있는 음식인 묵조밥을 맛볼 수 있는 집이다. 조밥에 도토리묵과 각종 야채를 넣고 바특하게끓인 된장으로 버무려 먹는다. 저칼로리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옛길따라…역사따라
문경새재와 같은 옛길은 의외로 많다. 포장도로가 생기고 또 도로의 직선화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굽이굽이 옛길은 그냥 버려져 있었다. 최근들어 옛길을 찾는 여행이 늘고 있다. 이미 트레킹의 명소가 된 곳도 있다.
▦대관령 옛길
가을과 겨울의 인기트레킹 코스이다.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휴게소에서 강릉 쪽으로 약 500㎙ 내려가면 '대관령 옛길, 반정(半程)'이라고 쓰여진 비석이 있다.
옛길입구이다. 후삼국의 궁예가 명주성(강릉)을 자기 영토로 만들 때 이 길로 군사를 몰았고, 이율곡의 손을 잡고 고향 강릉을 떠나던 신사임당이 이길을 넘었다. 지금은 약 5㎞ 구간만 남아 있다.
비석에서 어흘리 대관령 박물관까지가 트레킹 코스이다. 내려가는 데 1시간 30분, 오르는 데 2시간이 소요된다. 편도는 물론 왕복 트레킹도 즐길 수 있다.
길은 서너명이 이야기하며걸을 수 있을 정도의 폭이다. 가파른 부분은 꼭대기 부분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원래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는 길이었는데 조선 중종 때고형산이란 사람이 넓혔다. 중간 지점에 옛 사람들이 땀을 식히고 목을 축였던 주막터가 있다.
주막터부터 어흘리까지는 냇물이 함께 한다. 맑은 물은곳곳에 작은 폭포와 웅덩이를 만들며 강릉으로 내려간다.
사설박물관인 대관령 박물관(033-641-9801)은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영동지역의 유물을 모아놓았다.
▦백복령 옛길
백복령은 강원 동해시, 강릉시, 정선군의 경계에 있는 고개. 영동에서 영서를거쳐 서울로 가는 길목으로 지금은 42번 국도가 통과한다.
한약재 중 복령이라는 약초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흰 빛을 띄는 백복령이 많이 난다고해서 이름이 붙었다.
고개 정상에서 동해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도로 우측에 ‘백복령 옛길’이라는 표지석이 나온다. 옛길을 따라 약 40분을 걸어 내려가면 동해시 신흥동에 닿는다. 아직 등산로가 정비돼 있지 않지만계곡에 붙어 계속 길을 잡으면 된다.
▦남태령 옛길
‘과천서부터 긴다’라는 말은 지레겁을 먹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지방 사람이 서울을 찾을 때 그 위압감에 눌려 과천서부터 겁을 먹는다는 데서 유래했다.
과천시와 서울 사당동을 연결하는 남태령은 옛사람들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넘었던 고개이다. 서울쪽 옛길은 모두 없어졌지만 과천쪽 옛길은 남아있다.
관문사거리에서 서울 방향으로 오른편에 마을이 있고 그 마을 가운데로 샛길이 나 있다. 1㎞가 채 안 되는 짧은 길이지만 지난 해 과천시가 이 길을복원해 과천시민들의 인기 산책로가 되어 있다. 고개 정상에 오르면 누각이 있다. 서울대공원 등 과천시의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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