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친한 사람끼리 이야기하는 거리는45㎝를 벗어나지 않는다. 보통 친한 사람의 대화 거리는 75~125㎝이고, 사회생활 상 이야기를 주고받는 거리는 210~300㎝이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이 미국인의 ‘친밀 거리’를 조사한 결과다.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 친밀도에 따라 대화 거리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통계로 낸 것이다. 그는 또 자기 책상 옆90㎝ 거리에 방문자용 의자를 놓고 관찰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학생은 의자를 자꾸 더 멀리 떨어지게 놓으려 했다.
사람 사이에 다정한 대화가 그리운 시절이나, 타인과의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친밀의 거리는 이미 우리의 무의식 속에 정해져 있다.그 거리를 침해하는 것은 사회 예절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 개체 간의 거리가 무리하게 좁혀질 때, 인간이나 동물은 타자에 대한 공격성을 드러낸다.
‘집단적 괴롭힘’의 원조 격인 일본의 ‘이지메’는 종종 그들의 협소한 주거공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역사에서 보듯 일본인의특징은 주변국가에 대한 공격성, 가해성으로 나타난다.
생활에서 적당한 거리와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스트레스가 원인의 하나라는 추론이다.일본인의 주거 공간은 그들의 경제력에 걸맞지 않게 비좁다. 우리가 일본에서 배워서 안될 것 중의 하나가 좁은 공간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좁은 공간은 인간성ㆍ국민성을 왜곡시킨다.
몇 해 전 브라질에 가보고 감탄한 것이 많다. 드넓은 국토와 울창한 밀림을 바라보며 삼바춤과 축구에 열광하는 브라질인의 삶에 대한 긍정과 낙관이 부러웠다.
그들은 단순소박했고 인종적 편견이 없이 어울려 살고 있었다. 동료와 함께 우리의 인구 사정과 각박해지는 인심을 떠올리면서 “현상태로는 미래가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주고받던 기억이 새롭다.
최근 우리 출산율이 1.42명(1999년현재)으로 발표되자, 관련 부처 간 출산율 하락에 대한 우려와 긍정이 팽팽하다. 한 집 당 평균출생아가 1.42명이라는 것이다. 하락을 걱정하는쪽은 인구 고령화와 경제인구 감소, 노동력 부족, 노년 인구 부양비 증가 등으로 인해 국제 경쟁력에서 뒤 처질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반대입장에서는 출산율 하락 때문에 노동력 저하를 우려하는 것은 기술집약적인 시대에 맞지 않으며, 선진국 중에는 인구증가가 마이너스인 곳도 많다고 주장한다.또한 여성의 입장에서 노동력 부족을 여성인력 활용으로 극복하는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한국의 인구 사정은 아직 심각하다. 인구밀도는 1998년에1㎢ 당 467명이 되었고, 방글라데시 대만에 이어 세계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이 13억명의 대인구를 지녔지만 인구밀도는 한국보다 훨씬 낮은 131명인데, 이에 비해 국토는 남한의 96배에 이른다. 중국정부는 현재도한 자녀를 강권하고 있다. 일본도 인구밀도는 335명이고, 국토는 남한의 3.8배로 여건이 한결 낫다.
인구 정책에서는 당장의 국가 경쟁력보다 개인과 후손이 누릴 삶의 질이 더 심도있게 고려돼야 한다. 4,767만명이 모여 사는 우리의 국토, 특히 2,000만명이 바글대는 수도권의주거ㆍ교통환경을 보면 출산율 하락이 반갑기만 하다.
주중이면 도심 교통이 막히고 주말이면 근교 길이 막혀 도무지 움직이기가 겁나는 수도권의 삶을 보며, 출산율 하락을 걱정하는 것은 넌센스 같다. 그 위에 신도시가 자꾸 세워지는데 삶의 질을 얘기하는 것은 공소하고 허황돼 보인다.
삶에 대한 개인적 성찰과 환경에 대한 자각이 모처럼 출산율 하락으로 나타나고 있는 이 인구근대화의 문턱에서, 우리 인구는 더 줄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낭만 때문이 아니라 후손이더 쾌적한 공간에서 인간적 삶을 누리게 하고 싶기 때문에 그러하다.
박래부 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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