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계에서 존 댈리는 한동안 탕아로 인식되었다.1987년 프로로 전향하면서 괴력의 장타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댈리는 메이저대회인 PGA챔피언십(91년)과 브리티시오픈(95년)에서 우승할 때까지만 해도 세계 골프계로부터 ‘잭 니클로스, 아놀드 파머를 이을 골프영웅’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350야드를 넘나드는 장타와 파5홀에서는 거의 투 온을 노리는 공격적인 플레이는 팬들의 인기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지금은 타이거 우즈에 의해 기록이 깨졌지만 95년 브리티시오픈에서 우승하면서 댈리는 2개 메이저대회를 석권한 최연소선수와, 잭 니클로스, 톰 왓슨, 자니 밀러에 이어 2차 세계대전 이후 30세 전에 2개 메이저대회를 석권한 4번째 미국선수라는 영예를 안았다.
그러나 95년 이후 댈리는 기나긴 슬럼프의 늪에 빠지고 만다. 그때 그때의 감정을 숨김없이 표출해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쾌남아 기질에다 심각한 알코올 중독증세 때문에 필드에서 자기를 통제할 줄 모르고 무너지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골프계는 그를 ‘필드의 악동’으로 부르며 외면하기 시작했다.
그럴 즈음 타이거 우즈라는 불세출의 골퍼가 등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댈리는 한때 반짝 했다 사라지는 보통 골퍼로 전락하는 듯했다. 알코올 중독에다 도박, 여자문제 등 사생활까지 문란해 컷오프 탈락이 잦았고 라운드를 채 마치지도 못하고 골프장을떠나는 해프닝도 벌였다. 한동안 투어 참가를 중단하고 전문의 치료를 받았으나 별 효과가 없어 재활센터 신세를 져야 했다.
이런 댈리가 35세의 나이에 새로 태어났다. 3일 독일 뮌헨골프장에서 막을 내린 유럽골프투어 BMW 인터내셔널에서 합계 27언더파 261타로 파드레이그 해링턴(아일랜드)을 제치고 우승한 것이다. 댈리로선 브리티시 오픈 제패 이후 6년만의 목마른 우승이다. 미PGA투어에서 물러나 아시아투어와 유럽투어에 얼굴을 비치자 그를 아끼던 많은 팬들이 2류 선수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 안타까워했으나 드디어 기나긴 슬럼프의 터널을 뚫고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2년 전 골퍼로서의 재기를 다짐하며 재활센터를 박차고 나와 피나는 자기수련을 한 결과다. 술도 끊고 몸무게도 줄이고 네 번째 결혼으로 안정도 되찾았다.
돌아온 탕아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여전히 괴력의 장타를 자랑했지만 아무 때나 무모하게 드라이버를 휘두르는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파4홀에서 아이언 잡기를 마다하지 않고 좋은 샷이나 나쁜 샷을 해도 일희일비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일면 그에게서 구도자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그만큼 골프의 진수를 깨달았다는 증거다. 술, 도박 대신 틈이 날 때마다 서정시를 쓰고 기타를 친다는 댈리는 많은 골프 팬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줄 것이다.
방민준/광고본부 부본부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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