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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익씨 '한국문단사' 28년만에 재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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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익씨 '한국문단사' 28년만에 재출간

입력
2001.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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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익(63)씨가‘한국문단사’를 세상에 선보였던 것은 ‘기자’라는 옷을 입고 있을 때였다. 그는 동아일보 문학 담당 기자였던 1973년 4월연재물 ‘문단 반세기’의 첫 기사로 ‘육당과 최초의 신체시’를 내보냈다.‘문단반세기’는 주5일, 3개월 동안 연재됐고 그해일지사에서 ‘한국문단사’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묶여나왔다. 이 책은 한국현대문학사의 생생한 기록이 됐다.

절판된지 20년이 넘은 이 ‘한국문단사’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새롭게 출간됐다. 늦여름 오후 문학과지성사에서 만난 김씨는 막 나온 책을 가리키면서 “20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껏 책을 찾는 독자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책을 “자신의 시대에 대해 아프게 고민하면서 싸우던 작은 지식인으로서의 나의 30대 시절의 열정의 소산”이라고 불렀다.

그때는 서슬퍼런 유신 시절이었고, 김씨는 2년 뒤 언론자유화운동에 참여하면서 해직됐다.

김씨는 당시 식민지 시대 우리 문단의 궤적을 통해 유신 권력의 탄압에 시달리는 70년대 문학과 언론의 정황을 드러내고 싶었다고했다.

일제 하의 저항과 훼절을 알림으로써 우리 지식인의 저항을 격려하고 훼절을 고발하고 싶었다고도 했다.

그래서그가 기록한 만해 한용운의 에피소드는 꼿꼿한 저항에 초점이 맞춰진다. “일본 통치 하에선 절대 호적을 만들지 않겠다”는 고집 때문에 만해의 외동딸은 입적되지도 못했고, 학교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집에서 한문과 산수를 배웠다.

지독하게 빈곤하던 때 변절한 최린이 찾아와 딸에게 돈을 쥐어줬지만, 만해는 아내를 보내 그 돈을 도로 돌려주었다.

육당 최남선을 우연히 만났을 때 그를 “내가 장사지낸 지 오래된 고인”이라고 외면하면서 친일행위를 질타했다.

김씨는춘원 이광수의 변절 행위에 대해서는 2회에 걸쳐 연재했다. 춘원의 소설 ‘그들의사랑’에서 조선인 유학생은 엄숙하게 선언한다.

“나는 일본이 내 조국인 것을 깨달았소…오직 한 마음으로 일본을 위하여서충성을 다하기로 결심하였소.” 반민특위 심문관이 춘원에게 “그 재주와 그 머리로 왜 친일을했는가”라고 따지자, 그는 태연히 “나는 민족을 위해 친일을 했소”라고 답했다.

기사가 나간 뒤 김씨는 미국에 거주하던 춘원의 딸이 보낸 항의 편지를 받았다. 김씨는 “이후 춘원의 딸이 한국에 들렀을 때 나와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맺힌 마음을 풀게 됐다”고 회고했다.

유신 치하반공의 틀에 갇힐 수밖에 없는 기사였지만, 독자들이 ‘종이 뒷장을 보기를 바라는’ 소망을 품고 한 회 한 회 연재하면서 그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은 근대문학 초창기 우리 문인들의 문학을 향한 정열이었다. 김씨는 일제시대 지식인의 고민과 상처를 공감하게 됐고, 그들의 잘못까지도 끌어안을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갖게 됐다.

선배 문인의 훌륭한 모습과 비굴한 잘못 모두가 개인과 집단의 역사에서 빚어지는 가혹한 시련이라는 것을 이해하게됐다.

그의 부드러운시선은 위기에 처해 있다는 2000년대 문학에도 따뜻하게 비추어진다. 문학의 주변화에 대한 아쉬운 심정을 거쳐 이제는 세상의 흐름이라는 것을 알고받아들인다. 귀족주의자였지만 부르주아의 세상이 온다는 것을 예견한 발자크처럼.

김씨는새 책에 ‘1908~1970’이라는부제를 달았다. 70년대 이후 문단의 체험을 정리하고 싶다는 유혹을 느꼈지만, ‘한국문단사’를 손보아 다시 펴내는 것에서 멈추기로 했다.

“한국 문학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하고 사유를 넓혀준 이 책에 나 스스로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하는 김씨의 목소리에서‘한국문단사’에대한 깊은 애정과 자부심이 함께 전해졌다.

김지영 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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