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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동육교 23년만에 횡단보도로…"휠체어 장애인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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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동육교 23년만에 횡단보도로…"휠체어 장애인의 승리"

입력
2001.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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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1,000일 동안 소리 없이 평등의 돌을 놓은 징검보도입니다.”3일 새벽 서울 종로구 안국동 인사동 초입에는 칠이 선명한 횡단보도가 새로 그려졌다. 23년간이나 이 자리에서 주인 행세를 하던 철제 육교는 1일과 2일 밤 사이에 철거됐다.

단 몇시간 만에 그려진 횡단보도는 3년이라는 세월을 매달린 2급 장애인 박종태(朴鍾泰ㆍ43)씨의 끈기와 ‘열린 지평’ 등 장애인 단체의 지속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관할구청과 경찰서 등을 전전하며 고군분투한 이들의 ‘징검 보도 쌓기’는 장애인도 인사동 길과 경복궁을 ‘비장애인’처럼 산책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에서 비롯됐다.

지난해에도 이 곳에는 백상예술관과 인사동을 가로지르는 횡단보도 계획이 논의되다 무산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올해 6월 서울시로부터 예산 배정이 내려져 이날에야 결실을 맺었다.

육교가 굉음과 함께 무너지던 날에도 박씨는 밤을 꼬박 새우며 자리를 지켰다. 그는 “아직 광화문과 남대문, 을지로 등 횡단보도가 없어 장애인의 자유로운 통행을 막는 곳이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1978년 3월 건설된 인사동육교는 붙박이처럼 사람들 기억에 남아 있었던 게 사실. 장애인뿐 아니라 무거운 짐을 옮기는 행인이나 노약자에게 거대한 벽이었다. 게다가 겨울이면 꽁꽁 얼어붙어 발을 헛디디기 일쑤였다.

장애인 단체들은 거리의 모든육교와 지하도가 보행권 확보의 거대한 장애물이었지만 무엇보다 장애인 고용촉진공단을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이 육교야 말로 반드시 허물어야 할 ‘장벽’이었다. 박씨와 장애인들이 인사동 육교 철거를 위해 총력을 기울인 것도 이 때문.

3일 자신의 휠체어로 횡단보도를 건너 인사동으로 향하던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이규식(李圭植ㆍ33)씨는 “인사동에 있는 한국장애고용촉진공단 사무소에 가려면 무단횡단을 했는데 이제 떳떳이 지날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김흥성(金興成ㆍ65)씨도 “늘 불편했는데 장애인들이 횡단보도를 만들었다니 비장애인으로서 부끄러울 뿐”이라며 쑥스러워 했다.

장애인이동권연대 박경석(朴敬石ㆍ지체1급) 사무국장은 “횡단보도,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대중교통 이용 등 장애인의 이동권 확보를 위해서는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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