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긴급조치가 시국을 억누르던, 소위 ‘긴조시대’의 대학시절 어느 날 그 교수는 “오늘은강의 대신 질문을 받겠다”고 했다. 어떤 질문이라도 좋다고 했다. 시국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답이 오가면서 팽팽한 분위기가 이어지던 중 한 동료학생이 우매한 질문을 진지하게 던졌다.“우리는 왜 통일을 해야만 합니까.” 큰 질문인 것 같기도 하고, 장난 같아 보이기도 한물음이었지만 잔뜩 궁금해진 것은 교수의 답변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였다. 그러나 대답은 질문을 일축하듯 의외로 간단명료했다. “나도 그 문제를 내 과제 중 하나로 삼고 있는 중이네.”
비슷한 시기 다른 과목의 담당교수는 남북관계에 관한 한 매우 진지하고 무거운 자세로 접근하는 분이었다. 타 대학 교수였지만 그 과목만을 맡아 한 학기를 가르치던 그는 어느 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를 설명하다 “이렇게 가다가는 남북한이 각각 자신이 속한 블록으로 흡수돼 버릴지도 모른다”고 했다. 통일은 당연한 명제라야만 했던 생각에 충격을받은 기억이 아직도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지금과 비교하면 통일이나 남북의 평화공존을 얼마나 멀게, 어렵게 생각하던 때였는가를 새삼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다. 이제라고 해서 그런 과제가 가까이 와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때에 비해 세상은 엄청나게 달라져 있다.
다른수사나 설명을 모두 빼고, 북한문제가 정권운영의 한 복판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보는 오늘만으로도 이 느낌은 생생하기만 하다.
DJP 공동세력이 집권에 성공할 때 북한문제를 이렇게까지 결정적 이슈로 삼겠다고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직도 임기를 1년 반 남긴 공동정권을 해체시키고 있는 원인은 북한정책과 노선을 둘러싼 다툼이 돼 버렸다.
아무리 벅찬 감격 속에 탄생한 정권이라도 허망하게 주저앉는 모습은 국제무대에선 흔하다. 아시아에서 한국발 민주화 도미노의 하나로 해설되곤 했던 인도네시아의 와히드 정권은 스스로의 부패와 정적들의 집요한 공격으로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민중이 원했던 풀뿌리 출신으로 열광을 받았던 필리핀의 에스트라다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부유한 지주출신들로 이루어진 정치권의 기득 주류들이‘이방인’을 축출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지만 자기관리에 실패한 부패가 직접적 요인이었다.
한국 공동정권의 위기를 이런 현상들에 견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의 위기가 정권출범 이래 크기로 최대이자, 깊이로 본질에 닿아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불과 며칠이 걸린 결별의 수순이 이렇게 간단하지만 공동정권의 성공적 마무리가 국민에 대한 공약이자 도덕적 의무라고 스스로 강조했던 기억이 아직 있다. 그러나 양쪽 누구도 이에 대한 자성을 앞세우지는 않는다.
DJ쪽에서는 통일장관의 해임문제는 정권의 정체성에 관한 것으로 일개 장관의 거취차원이 아니라는 입장인 듯 하나 과장과 생략이 느껴진다. 통일장관의 해임표결에 찬성하는 중대행위를 두고도 공조를 깨는 것은 아니라고 강변하는 JP쪽에서 주장만 일삼는 ‘삿대질 정치’를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뒤죽박죽 엉킨 것 같지만 사상(捨象)할 것 하고 나면 정리가 안될 것도 없다. 북한은 북한이고, 정책은정책이고, 개인은 개인이다.
햇볕정책이 정권의 정체성을 결정지을 수 있다 해도 정책을 극단적으로 의인화해 벌어지는 이 판국은 어색하다. 게다가당국간 남북대화를 제의하면서 갑자기 끼여든 북한으로 국민은 더욱 어지럽다. 다시 정치권이 상대로 삼을 국민들은 ‘그국민’과 ‘이 국민’으로 우왕좌왕할 일만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피해가 이미 발생했다는 것이다. 경제와 사회에 몰아칠 공동정권의 위기에 당사자들은 성의있는 설명을 해야 한다. 그리고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
조재용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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