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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감독 김성수 "할리우드엔 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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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감독 김성수 "할리우드엔 안간다"

입력
2001.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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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중순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에서 영화 ‘무사’ 시사회가 있었다. 콜롬비아, 워너브러더스, 소니픽처스, 미라맥스 등 미국 메이저들이 참가했다.영화 상영이 끝나고 그들은김성수(40) 감독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영어를 할 줄 아느냐” “다른 작품을 볼수 없겠느냐” 등등.

할리우드로서는 이미 영입한 홍콩 오우삼(존 우) 감독 못지 않은 독특한 액션연출 스타일을탐낼 만도 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할리우드 진출 한국감독 1호’가 될 수도 있는 기회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라면‘좋아라’ 라고 떠벌릴 텐데, 김 감독은 흥미가 없는 것 같다.

이유가 재미있다. “팔려가 서 한물간 배우들로 2류 액션물 찍는 데 이용당하고싶지 않다. 나 혼자는 별 볼일 없다. 승산이 없다.

‘비트’부터‘무사’까지 함께 작업해 온 내 팀(조민환 프로듀서, 김형구 촬영감독, 이강산 조명감독, 배우 정우성)이힘을 합쳐야 내 능력도 발휘된다”는 것이다.

가도 같이 가고, 그보다는 그들과 함께‘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좀 더 힘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스스로 “양아치의 의리”라고 말하는 그 팀웍이 중국 현지촬영의 혹독한 추위와사막바람을 이겨내게 했고, ‘무사’의색깔을 결정해 버렸다. “9명의 무사가 끝까지 간다.”

한 명을 영웅으로 부각시켰다면 영화는 더 강하고 집중력이 있었을 것이다. 막내단생(한영목)의 죽음처럼 모든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엮으면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관객은 등장인물 각자가 가진 회한이나 감정, 시선에 관심이나 가질까.

여솔(정우성)과 최정(주진모)의 결투에서 느닷없이 잡은 진립(안성기)의 표정이나 액션물로서는 금기에 해당하는 연속 근접촬영은, 그들 사이에 벌어진 상황이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 할지라도 각자 시선과 입장과 심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관객이 불편해 한다면, 그 불편을 야기시키고 싶었다.”

후회는 없다. 나중에라도 기회가 있어 ‘지옥의묵시록’처럼 디렉터스 컷(감독 편집)을 내놓더라도 지금과 같을 것이다.

“잘못이있다면 등장인물을 좀 더 잘 조율하지 못한 내 능력이다. 연출의 바닥을 봤다”고하지만 어쨌든 이런 큰 영화를 자기 스타일로 끌고 갈 만한 한국감독이 또 있을까.

김성수는 요즘 컴퓨터를 배우고 있다. ‘무사’처럼모래바람이 귀 속까지 파고드는 사막에서 무식하게 촬영을 하는 것보다 ‘글래티에이터’처럼 30%를 3D컴퓨터그래픽으로 채우는 지혜와 기술에 관심이 크다. 오랜만에 단편도 찍을 계획이다.

1974년 한 여름, 한국에 온 복싱영웅 무하마드 알리를 보기위해 서울 이태원에 달려갔던 한 소년(김성수)의 이야기를. “나 혼자만의 재미를 위해 시간을 갖고 싶다.”

■김성수 감독이 말하는 ‘무사’ 보는 법

‘무사’에는 영웅이 없다. 멜로도 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당연히 할리우드 관습에서 벗어나 있다. 때문에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만약‘무사’가 그것에 충실했다면 그들은 좋아할까. 그때는 또 분명 “너무관습적”이라고 비판할 것이다.

9명 중 어느 한 명도 도중에 버릴 수 없었다. 모두 영웅이고 주인공이다.칼 한 번 제대로 잡지 않은 역관 주명(박용우)조차.

때문에 평등하게 넣고 잘랐다. ‘황야의 7인’ 이나 ‘돌아오지 않은 해병’처럼처음부터 그렇게 하고 싶었다.

만약 익숙한 영웅 드라마였다면 명분 없는 허망한 싸움, 지겨운 여정을 계속할수록 커지는내부 갈등이나 절망과 죽음 앞에서의 공포,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극한 전투의 의미는 오히려 희석됐을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을 따라가다 안 나오면기다리지 말고 그 사람의 입장이 돼 다른 인물을 보라. 그러면 왜 그들이 계급갈등을 버리고, 마침내 한 덩어리가 돼 명분없는 죽음을 선택하는지알 것이다.

그 죽음 앞에서 오히려 인간성을 회복하는 ‘아웃사이더’의 참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무사'의 전투장면 이런 영화 닮았다

‘무사’ 액션에는 몇가지 원칙이 있었다. ‘땅에서 1㎙ 이상 날지 마라’ ‘상대를베고 멋있게 폼잡고 서있지 마라’ ‘칼과 창으로 직접 상대를 베고 찔러라’

중국의 과장, 일본의 형식미를 거부했다.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전투에서의공포 심리를 복원해 보자는 계산이었다.

‘무사’에는 크게 5번의 전투장면이 나오지만 방식이 모두 다르다.상황에 따라 그것은 난전이 되고, 비열한 전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유명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사막 습격장면

원(元)기병과 고려 무사의 싸움. 갑자기 날아온 화살이 사람의 목을 꿰뚫고,손도끼가 목에 박히는 아비규환. ‘라이언일병 구하기’에서 처음 해안에 상륙할 때의 혼돈과 공포가 떠오른다.

#공주 구출 장면

흔히 말하는 극사실주의이다. 동작을 분절시키는 개각(開角) 촬영이 사막의 먼지와 물방울까지 생생하게 잡아냈다.

눈과 진흙탕물이 날리는 ‘글래디에이터’의첫 숲속 전투장면과 흡사하다. 그것으로 영화는 혼란과 공포감을 최대한 드러내려 했다.

#숲속 전투

김성수 감독이 “가장 비열하고 잔혹하다”고말하는 전투. ‘플래툰’에서 풀밭을 스치며 베트콩을 저격하는 미군들의 모습과 같다.

낮고 빠르게 이동하는 무사들의 모습과 그들이 원의 기병들을 하나하나 죽이는 장면과 소리의 나열로 공포와 스릴을 살렸다.

#토성에서의 마지막 전투

‘전투’라고 하기보다는집단 패싸움의 형태. 이미 무사들은 살기를 포기했고, 원의 군사들은 그들을 몰살시키기로 마음먹었다.

보기에 따라서는한바탕 ‘춤’ 같기도 한 슬픈 난장이다. 특별한 연출도 없었다. “그냥싸우다 죽어라”는 게 감독의 주문이었다.

그래서 더 강렬하고 처절한 ‘무사’의액션에 비하면 마차에서의 여솔과 성밖에서의 여솔, 최정과 그의 부관 가남(박정학)이 벌이는 관습적인 전투는 ‘겉멋’에 불과하다.

이대현 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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