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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대망론과 옹립론

입력
2001.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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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뒤숭숭하니 별 일도 다 있다. JP 대망론이 역사의 순리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박근혜 옹립론까지 나온다. JP가 다음 정권의 수장이 돼야 한다는 것이 JP 대망론이라면, 박 씨를 다음 대통령 후보로 하자는 게 박근혜 옹립론이다. 어디까지나 그들 주변이나 이해 당사자들의 희망이라고는 해도 가당치 않은 오만이자 과대 망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둘 다 비명에 간 박정희 전 대통령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다. JP는 박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로 그의 철권통치 때는 2인자였고, 박근혜 씨는 그의 장녀다. ‘대망론’이나 ‘옹립론’이 현실화된다면 헌정사에서 가장 극명하게 평가가 엇갈리는 박정희의 성공적 부활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대망론이나 옹립론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그렇게 크지 않다. 수사(修辭)가 아무리 현란하고, 격변의 고비를 헤쳐가는 처세술이 탁월하다 해도 절대다수의 표심(票心)은JP를 식상해 한다. 옹립론도 마찬가지다. 박 씨 역시 자신의 어머니 모양새를 흉내내며 영남을 비롯한 전국 아낙의 눈물샘을 자극한다고 한들 그기엔 분명히 한계가 있다.

나라 꼴이 이래서야 되겠는가. 이들이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것 자체가 한국정치의 낙후성을 웅변한다. 민주주의가 가장 경계해야할 일이 우중(愚衆)을 배경으로 하는 중우(衆愚)정치다. 아무리 2대에 걸친 민주화 세력의 정치가 실패한 실험으로 끝난다고 해도 죽은 박정희 후광으로 정권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말이나 될 법 한 일인가.

JP가 5 .16쿠데타로 정치에 입문한 것은 40년 전이다. 고령이라 안 된다는 법은 없지만 JP의 대권욕심은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일이다. JP측의 계산은 우호적인 YS 지원을 바탕으로 DJ를 압박하면 그의 말대로 ‘서산을 벌겋게 물 들이고’, 또 ‘잠들기 전가야 할 몇 마일을 더 갈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 않나 보여진다.

하지만 더 이상 국민은 ‘핫바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뛰어난 감각의 YS가 JP를 편들리 만무하고, ‘3김 합의’ 가능성 또한 전무하다.그렇다면 대망론의 실체는 분명하다. 내년 지자제 선거 판을 겨냥한 JP의 시위용이다. 우리정치 풍토에서 대권야망 없는 ‘불임정당’은 존재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대망론은 내년 충청권이라도 차지해 정치적 연명을 도모하려는 JP의 궁여지책에 불과하다.

박근혜 옹립론도 포말성(泡沫性)이긴 마찬가지다. 그녀가 국회의원이 되고, 또 제1야당 부총재가 된 것은 전적으로 ‘누구의딸’이란 이유밖에 더 있는가. 한국정치가 아직도 이런 수준에서 머문다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최근부친의 후광으로 집권한 인도네시아의 메가와티나 필리핀의 아로요 같은 여걸들의 등장은 박 씨측에겐 고무적 사실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기적 같은일은 1인 당 소득이 1천 달러를 겨우 상회하는 정치적 후진국에서 생긴 일이다.

극단적인 강압 통치였지만 그래도 도약의 기틀을 마련한 박 씨 아버지 덕에 지금 우리는 1만 달러 수준의 선진국 대열(OECD)에있다. 이런 나라에서 동남아적 환상을 한다면 어리석기 짝이 없다. 대권을 운위하기엔 그의 정치적 이념이나 목적이 뚜렷하지 않다. 고작 ‘우리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식의 추궁만이 눈에 띨 뿐이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역사의 몫이다. ‘국회의원 박근혜’의 극성으로 반전될 일은 물론 아니다. 폭압에 멍든 많은 피해자들이 아직도 당시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아무리 우리의 현실 정치가조롱의 대상이라지만 대망론이나 옹립론은 정치를 더욱 희화화(戱畵化)할 뿐이다. 터무니없는 노욕이나, 턱없는 과대망상은 자신은 물론 나라에도 이로울게 없다.

노 진 환 논설실장

jhr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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