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성과를 내는데 1억 5,000만원 가량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기초로 치료제가 나오기까지는 3,000억원~1조 원이 들어갈 지 모릅니다.”지난달 27일 위암 세포가 인체면역공격을 피해가며 퍼져가는 원인을 규명한 고려대생명공학원 안광석 교수의 말이다.
본격적인 생명공학 전쟁에서 기초생명공학 성과를 ‘산업화’하는데 어려움이 불거지고 있다. 기초연구성과의 바통을 이어 받아야 할 기업과 의료업계의 허약함, 턱없는 정부지원과 부처간불협화음 때문이다.
■ 기초연구성과에서‘상품’까지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은 최근 사업착수 1년 성과로 그동안 1만 4,000종의 한국인 유전자를 발견했으며이 중 위암 및 간암과 관련 있을 것으로 보이는 유전자 670여 종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또 사업단은 이를 토대로 2년 후에는 위암및 간암 유전자를 밝혀내고, 2004년에는 항암 효과를 가진 신약을 개발, 2010년쯤 이를 상용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10년 간정부ㆍ민간이 이 사업단에 투자할 금액은 1,700억 원. 전문가들이 하나의 획기적인 항암 치료제를 ‘상품’으로 내놓는데 필요하다고 제시한 금액의 절반 정도에불과하다.
대학ㆍ연구소의 기초연구성과를 넘겨 받아 실제 상품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는 산업환경도 실로 척박하다. 제약회사가 투자를 통해 임상연구까지 가는 경우는 극히 드문 실정이다.
동화약품 연구소 유제만 부소장은 “ 국내 기업은 특정 치료제의 동물실험에 성공한 후에도 외국 제약회사등에 라이센스를 팔아버리는 경우가 대부분” 이라며 “임상실험, 제품 생산에필요한 막대한 금액을 감당할 수 있는 업체가 많지 않다” 고 말했다.
■ 한국의 글리벡은 불가능하다?
노바티스가 글리벡의기초가 된 화합물질을 임상실험하고 상품화하는데 쏟아 부은 금액만 1억 달러(1,300억원) 이상. 국내 제약회사의 역량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투자액이다.
물론 정부에서 기초연구성과를 이전 받아 상품화하는 기업에 대한 지원정책을 펴고 있다. 하지만 획기적인 신약을 기대하기에는 턱없는 수준이다.
과학기술부가 매년 시행하고 있는‘연구성과지원사업’은 선정 과제당 1억 5,000만원 이내, 최소 6개월~2년을 넘지 못하도록 되어 있으며, 1회에 한에서만 한정 지원하고 있다.
산업자원부나 보건복지부와연계가 없어 가능성 있는 성과에 있어서 타 부처의 후속 지원도 요원하다. 과기부 관계자는 “후속 지원금을 원할 경우 기업체 스스로 산자부나 보건복지부와접촉하는 길 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원자력연구소의 항암치료 성과를 이전 받아 최근 초기 간암치료제 밀리칸주를개발한 한 동화제약의 경우 임상실험부터 상품개발까지 6년간 45억원을 투자했는데, 이 가운데 약 5,000만원만 정부 지원금이다.
한 생명공학자는 “기초 연구의 부족함도문제지만 생명공학의 연구성과가 실제 국민의 건강 증진에 기여하기까지 이를 산업화하는 국내 역량이 너무 미흡하다”고 말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글리벡이 나오기까지
캡슐 당 1~2만원 대에서 정부와 노바티스사가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기적의 백혈병치료제 ‘글리벡’. 글리벡 개발의 역사는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 미 펜실베니아 주립대 의학자 피터 노엘과 데이비드 항거포드는 백혈병환자의 22번 염색체가 정상인보다 짧다는 것을 발견했다.
22번 염색체 내의 특정 DNA가 통째로 없어진 것이다. 무려 13년 후인 1973년시카고대 의학자 자넷 로울리에 의해 22번 염색체의 사라진 DNA 조각이 9번 염색체에 붙어있다는 것이 알려진다.
80년 대에 들어 과학자들이 백혈병 치료제를 찾기 위해 9, 22번 염색체 연구를 본격화한다. 가장 앞선 사람이 화이트헤드생의학연구소의 데이비드 볼티모어 박사였다.
그는 9번과 22번 염색체의 비정상적인 유전자가 융합해 만들어낸단백질이 세포의 성장과 분열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효소인 ‘타이로신 키나제’ 임을 밝혀냈다.
이 성과를 발판으로 글리벡을 탄생시킨 주역이 캘리포니아 의과대학 출신의 브라이언드러커였다. 1992년 드러커는 타이로신 키나제가 세포분열을 명령하는 특정한 신호체계와 연관이 있어 백혈구의 과잉생산을 부추긴다는 것을 알아냈다.
타이로신 키나제가 불완전한 22번 염색체를 가진 세포에 활기를 불어넣어 급속한 분열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드러커는 1993년 다른 방식으로 타이로신 키나제를 연구하고 있던 스위스의 제약회사치바가이기 소속 과학자들과 공동으로 비정상적인 9, 22번 염색체를 가진 세포를 죽이는데 뛰어난 화합물질 STI-571(약품개발코드)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
치바가이기사는 곧 노바티스사에게 인수되고 노바티스는 임상실험을 개시한 후 보통6년 이상 걸리는 개발 기간을 훨씬 앞당겨 32개월 만에 FDA(미 식품의약국)에 신약신청서를 제출했다. FDA는 암 치료제로서는 가장 짧은 두달 반 만에 시판을 승인했고 이로써 ‘기적의 약’이 세상에 나오게 됐다.
이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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