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흐름은 우리 편입니다.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인간이라는 것을 밝힐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습니다.”청송 심씨 종중(宗中)을 상대로 항소심을 진행 중인 심정숙(64)씨는 요즘 현관 문을 꼭꼭 잠그고 산다.
지난 달 31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심씨 자택을 찾아갔을 때에도 몇 차례 신분 확인 끝에야 만날 수 있었다.종중과 법정 싸움을 하면서 누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해 수원지법 1심 재판을 앞두고는 친 오빠이자 청송 심씨 혜령공파종친회장인 심광섭(67)씨가 집에 찾아와 심한 말까지 했다. “출가외인에게는돈 10원도 줄 수 없다” 는 것이 오빠의 말이었다.
알려진 것과 달리 1,000만원에 합의한 게 아니라 항소심을 준비 중인 심씨는 항소심의 본질은 ‘돈’이 아니라 ‘여성평등권’ 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돈 몇 푼 받는 게 목표였다면 지난 달 28일 서울고법 판사가 “1,000만 원을 받고 합의하라”고 했을 때 이를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각종 법정 기록과 종중 정관, 대법원 판례, 신문기사 스크랩을 보여주며 “헌법소원까지 가서라도여성평등권을 인정 받겠다” 고 말했다.
“판사가‘원고와 피고는 모두 같은 후손’이라며 합의를 권유했을 때 잠시 눈물이 났습니다. 1,000만원 때문이 아닙니다.
‘종중은 성년 이상의 남자로 구성된다’ 는 1994년 대법원 판례가 있는데도 판사가 합의를 권유한 것은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여성 평등권을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기때문이죠. 세상은 분명 변하고 있습니다.”
심씨가 서울고법의 강제조정결정에 불복해 끝까지 싸우기로 결심한 것은 앞으로도 종중이 처분할 수 있는 문중의 땅이 3만 7,000여 평이나 있기 때문이다.
99년 12월매각한 8,000여 평의 경우, 매각대금 60억 여 원을 오로지 남성 종원 50여 세대에게만 분배했다.
남성 종원의 직계 가족일 경우에는 시집간딸은 물론 갓 태어난 아이에게도 돈을 줬다. ‘여성의 종원 자격 인정’ 이라는 법원 판결문 없이는 이 같은 ‘여성을 무시하는 처사’ 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게 심씨의 생각이다.
“지금이어떤 세상인데 성인 여성이 이제 막 태어난 사내아이만도 못한 대접을 받아야 합니까? 끝까지 가면 이길 수 있습니다.지켜봐 주세요.”
김관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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