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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리포트 / 두산주류BG 김대중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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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리포트 / 두산주류BG 김대중 사장

입력
2001.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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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책상 서랍 속엔 아직도 사표(辭表) 봉투가 수북이 쌓여 있다. 최고 사령탑인 사장과 부사장부터 전무와 상무, 부ㆍ차장 및 과장에 이르기 까지. 회사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벼랑 끝까지 내몰렸을 때 재도약을 다짐하며 써놓은 ‘서약서’들이다.두산주류BG 김대중(金大中ㆍ53) 사장은 요즘 책상 서랍에 눈길이 자주 간다. 신제품 ‘산(山)’ 소주를 발판으로 벼랑 끝에서 탈출한 것은 분명한데 과연 사표를 찢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어쩌면 행복한 고민일지도 모른다.

지난 해는 정말 참담했다. 비교적 순탄했던 30년 샐러리맨 인생에서 최악의 시련을 맛봐야 했다. 한 때 ‘그린 신화’의 주역으로 명성을 날리던 그에겐 ‘마치롤러코스트를 타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기나긴 암흑기였다.

경쟁사를 따라잡기 위해 야심차게내놓은 신제품 ‘뉴그린’과 ‘미(米)소주’ 등이 잇따라 참패하면서 주류명가 두산의 소주시장 점유율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바닥권까지 추락했다. 패장(敗將)의 오명을 뒤집어 쓴 채 전선에서 쓸쓸히 퇴장해야할 처지였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했던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던 두산은 올 들어 녹차를 함유한 소주 ‘산’의 돌풍으로 기적처럼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올 1월 ‘산’을내놓은 이후 두산의 소주판매량은 매월 평균 30%씩 증가하며 잃었던 땅을 빠르게 회복해가고 있다.

두산의 존재를거의 잊다시피 했던 경쟁업체들도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만난 듯 초비상이 걸린 상태다. ‘산’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해 온 김사장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각오로 전직원이 힘을 합쳐 죽기살기로 달려든 결과”라고 힘주어 말한다.

‘녹차 소주’의 프로젝트가 처음닻을 올린 것은 지난 해 4월. 신제품의 잇따른 실패로 기업 분위기가 침체될 대로 침체됐던 때였다. 김사장은 본인이 직접 주관하는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주 말마다 빠짐없이 교외 모처에서 합숙을 하면서 작전회의를 계속했다.

녹차와 솔잎, 맥반석과 게르마늄, 단풍나무추출액 등 온갖 재료를 다 써가며 소주와의 궁합을 테스트했다. 녹차를 핵심재료로 확정한 뒤에는 KGB 뺨치는 비밀작전에 돌입했다.

태스크포스팀원을제외하곤 회사 내 어떤 고위급 임원도 후속 제품의 내용을 몰랐을 정도로 철통같이 보안을 유지했고, 경쟁업체에서 눈치 챌 수도 있다는 판단하에의 도적으로 역정보도 흘렸다. 완제품이 나오기 직전까지 시장에서 두산이 솔잎소주, 게르마늄 소주를 낸다는 소문이 파다했던 것도 이 같은 ‘작전’ 덕분이다.

제품개발을 완료한 지난 해 12월부터는 작명이 문제였다. 미아리의 점쟁이집부터 작명가와 전문 브랜딩업체를 일일이 찾아 다니며 후보감을 물색했다. 발로 뛰어 모은 제품명이 무려 1,000여개. 수십 차례의 회의 끝에 마침내 ‘건강, 자연, 신선’을 핵심 컨셉으로 한 녹차소주 ‘산’이 탄생하게 됐다.

김 사장은 요즘 “‘그린 신화’ 때보다도 갑절이나 성장속도가 빠르다”며 매우 고무된 표정이다. 하지만 “마라톤경기의 출발점을 이제 막 떠난 셈”이라고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산’소주를 시판한 이후에는 자정 전에 귀가한 적이 없을 정도로 연일 ‘야간 근무’의 연속이다. 밤마다 서울시내 음식점들을 훑고 다니며 소비자들의 반응과 소주의 판매동향을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소주 한 병만 달랑시켜놓고 허구헌날 귀찮은 질문만 하니까 ‘그만 좀 오라’며 짜증내는 주인들도 많다”고 할 정도다.

두주불사형에다 불도저 같은 업무추진력으로 사내에선 ‘히틀러’로 통하는 그는 조지훈 선생의 ‘주도유단(酒道有段)’18단계 가운데 자신은 5단인 ‘장주(長酒ㆍ오래 술을 마시는 사람)’수준이라고 했다. 30년을 술과 함께 살아왔으니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비유 같다.

■김대중 사장 약력

1948년 경북 안동 출생

1966년 경북고 졸업

1970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78년 동양맥주 차장

1988년 동양맥주 이사

1993년 주식회사 경월 대표이사

1998년 삼화왕관 대표이사

1998년 두산포장 대표이사

1999년 두산주류BG 대표이사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두산주류BG는

두산그룹 계열사인 두산주류BG는 1998년 9월 두산 백화와 두산 경월을 합병해 출범한 주류전문회사. BG는 ‘Business Group’의 약자로 일종의 사업본부에 해당된다. 현재 두산그룹 내에는 주류ㆍ식품ㆍ상사ㆍ전자ㆍ기계ㆍ생활산업ㆍ출판BG 등 7개의 BG가 있으며 각각의 BG는 대표이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두산주류BG는 소주를 비롯해 청주와 와인, 과실주 등 다양한 주류품목을 취급하고 있으며 올 4월에 조선시대 왕실의 비법을 재현한 13도짜리 ‘군주’를 출시, 전통약주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청주 부문에서는 장수 브랜드인 ‘청하’를비롯해 ‘수복’ ‘국향’ ‘설화’ 등 많은 제품군을 거느리며 오랫동안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매실주 제품 ‘설중매’ 역시 매실주 시장 1위 브랜드로 꼽힌다.

소주는 옛 두산 경월의 강원도 공장을 신축해 생산하고 있는데 ‘그린소주’ 이후 후속제품들이 잇따라 시장안착에 실패하면서 침체를 겪어오다 올들어 ‘산’을 내놓은 이후 빠른 속도로 점유율을 회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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