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도 사과 및 배상 문제가31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항구도시 더반에서 개막한 유엔 인종차별철폐회의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식민시대 노예제의 ‘청산’ 문제는 최근 나치 강제노동에 대한 배상이 나치 패망후 50년 만에 실현되면서 가시화했다. 서구 각국이 과거 아프리카에서 저지른 노예 매매의 잘못을 명확히 인정, 피해를 배상하고 현재도 일부 남아있는 노예제를 반 인류 행위로 규정하자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인류사상 최대의 강제이주로 기록되고 있는 아프리카 노예 매매로 1650~1850년 사이에 1,200만 명의 아프리카인이 미 대륙으로 옮겨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또 18세기에만 노예로 팔려간 아프리카인이 영국 253만 명, 포르투갈 180만 명, 프랑스 118만 명, 네덜란드 35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로 인해 아프리카의 기존 공동체가 붕괴됐고, 후유증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만큼 사과와 배상은 도리어 때늦은 것이라는 게 관련국들의 입장이다.
노예제를 비난하는 데 대해선 각국의 이견이 없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사과 및 보상에 이르면 유럽과 미국, 그리고 아프리카의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아프리카는 노예제에 대한 사과를 얻어내는것을 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역사적 명분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서방 선진국들로부터 개발 자금을 얻어내고 부채를 탕감받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기때문이다. 타보 음베키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노예제의 유산을 제거하기 위한 가시적인 약속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사과와 이에 따른 배상 대신 우회적인 경제지원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아프리카가 뿌리인 흑인 인구를 지닌 미국도 내심 이 문제가 부각되는 것을 꺼리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인권단체와 변호사들은 이번 회의와는 별개로 내년 초 노예제로 이익을 취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예상돼 국내외에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한편 한국과 중국 등은 일본의 군대위안부와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를 이번 회의에서 공식 제기할 예정이어서 같은 식민 보상 차원에서 어떻게 귀결될지 주목된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억압 규탄문제는 시오니즘을 인종차별로 규정하는 대신 ‘점령권력의 인종 차별적 관행’ 또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종차별행위’라는 문구를 채택하느냐가 논란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
130여 개 국 대표단과 국가원수 15명이 참석한 가운데 7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회의는 이밖에도 인도의 카스트, 동남아의 화교, 중국의 티베트 탄압 문제 등 지구촌의 온갖 고질병이 토의에 붙여진다.
그러나 당사국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기피하는 태도여서 토의의 결실은 거두기 어렵게 돼 있다.
남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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