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가 대혼란에 빠졌다. 당장 어떻게 할 수가 없게 됐다.헌법재판소가 30일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보류’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림에 따라 영화 상영을 통제할 수 있는 기능이 완전히 사라졌고, 대안도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영상물등급위원회 김수용(金洙容) 위원장은 31일 “이제 영화진흥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어떤 영화라도 최소한 ‘18세 관람가’ 등급을 받게 된다”고 밝혔다.
포르노물이나 비디오용 에로비디오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극장에서 상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 본심의를 기다리고 있는 작품은 30여 편. 그 중 몇 작품은 문제가 될수 있지만, 영상물등급위원회로서는 이제 보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등급을 내줄 수밖에 없게 됐다.
이번 판결의 계기가 된 이지상 감독의 영화 ‘둘하나 섹스’도 등급을 받아 극장에서 상영될 전망이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우리가할 수 있는 일이란 제작사(수입사)와 검찰에 외설에 해당하는 장면이 있으니 유의하라는 정도의 의견진술로 사후 제재에 도움을 주는 정도”라고 밝혔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 심의에 대한 논란도 예상된다. 문화화관광부는 “현재의 영상물등급위원회는 독립된 민간자율기관”이라며 존속 방침을 밝히고 있지만, 헌법재판소가 등급심의는 인정하면서도 영상물등급위원회를 실질적 검열, 행정기관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검열기관에 등급심의를맡길 수 없다”는 반발도 영화계에서 나올 수 있다.
영화뿐만이 아니다. 비디오, 인터넷, 게임 등의 영상물에 대한 심의 기준도 혼란에 빠졌다. ‘음반 비디오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3개월 등급보류 조항 역시 이번 판결로 유명무실해졌다.
영화평론가 조희문(趙熙文) 상명대 교수는 “그렇다고 당장 큰 혼란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거짓말’에서 보았듯이 문화의 수용 태도도 많이 성숙해 있다”라면서도 “하지만 문제는 정부가 추진중인 ‘제한상영관(등급외 전용관ㆍ성인전용 극장)’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 역시 또 다른 위헌의 소지를 안고 있다. 이제 모든 영화는 극장에서 걸리고 나서 개별적으로 위법 여부를 가려야 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말했다.
그나마 제한상영관도 각 정당간 합의를 전제한다 해도 아무리 일러야 10개월 후에나 생길 전망이다.
정부의 생각대로 올 정기국회에서 영화진흥법이 개정되더라도 유예 기간을 거치고 극장설립 등 준비를 하려면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
제한상영관 제도는 정부가 두 차례나 추진했으나 시민단체와 국회의 반발로 모두 보류된 만큼 언제 도입될지 모른다.
그 동안 제한상영관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던 한나라당과 자민련 역시 신중하게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영화계의 혼란은 사회적 정치적 합의가 빨리 이루어지지 않는 한 예상보다 오래 갈 전망이다.
시민들은 영화계와 시민단체, 정부, 국회가 하루빨리 합의점을 찾아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제한상영관 도입은 산넘어 산
이번에는 제한상영관 신설이 가능할까. 정부와 영화계는 “이제는 더 이상 대안이 없다”는 견해이다.
문화관광부는 국회에 계류중인 영화진흥법을 손질해 이르면 다시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되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영화인회의,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도 30일 공동 성명서를 발표, “헌법재판소의이번 결정을 환영하며, 등급외 영화를 포함하는 실질적 완전등급제가 이뤄져야 한다”며 제한상영관 도입을 촉구했다.
그러나 종교와 청소년 단체의 반대 여론도 거세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송인수(宋寅秀) 집행위원은 “성급하게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청소년보호위원회 김성이(金聖二)위원장도 “제한 상영관은 절대 반대한다. 현실적으로 청소년의 출입을 막을 수 있겠는가”라고 주장했다.
여론을 떠나 영화진흥법개정안의 국회통과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달리 그 동안 줄곧 제한상영관을 반대해 온 한나라당과 자민련이 계속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문광위 간사인 한나라당 고흥길(高興吉) 의원은 “시기상조다. 또 법으로 제한상영관을 보장해주는 나라도 없다.
도입하더라도 청소년 보호장치를 제대로 마련하고, 폭넓은 여론을 수렴해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광위 소속 자민련의 정진석(鄭鎭碩) 의원 역시 “신중해야 되지 않겠느냐. 꼭 필요하더라도 면밀히 검토한 후에 결정해야 한다. 이번 정기 국회에서 성급하게 처리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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