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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2167)너무나 방어적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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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2167)너무나 방어적인 정부

입력
2001.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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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원 통일부 장관에 대한 사퇴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임장관의 사퇴나 해임을 요구해 온 한나라 당은 오늘 국회에서 해임안 표결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고, 공동여당인 자민련의 김종필 명예총재는 국회표결 전에 자진사퇴 할 것을요구하고 있다.정부는 진퇴양난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딱한 처지에 빠졌다. 8.15 평양축전에 참석했던 남측 대표단 중 일부의 ‘돌출행동’에 대한 논란이 통일부 장관 퇴진 압박으로 이어진 것은 정부가 여론악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평양에서 일어난 불상사에 대해 즉각 국민에게 사과하고 양해를 구했다면 햇볕정책의 핵심인물을‘유탄’으로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는 “6.25때 전사한 나의 (육사)동기생들이 김일성 밀랍상 앞에서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보고 지하에서 뭐라 하겠느냐”고 말했다. 6.25 전쟁에 참전했던 노병(老兵)의 탄식이거니 해서는 안 된다. 지금 시중의 민심은 정부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우경화’하고있다. 일본의 우경화만 걱정할 일이 아니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지하면서 ‘햇볕호’에 함께 타고 달리던 사람들 중에서 중도에 이미 하차했거나 내리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운전자나 달리는 속도에 대한 불만때문이다. 중도하차 한 사람들은 ‘우경화’할 가능성이 높고, 일부에서 말하는 ‘반통일세력’으로 나아갈 가능성도 있다. 애초에 ‘햇볕호’에 승선했다는 것은 비교적 진보적이거나 인도적이거나 통일을 앞당겨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이런 성향의 지지자들을 잃는다는 것은 햇볕정책 뿐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도 안타까운 일이다.

박준형 청와대 대변인은 30일 방북단 일부의 돌출행동에 대해 장관이 책임질 수없다는 종전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정부의 방북허가 절차에 잘못이 없었고, 물의를 일으킨 사람들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묻게 될 것이니 이번 사태의원인과 결과와 과정을 냉정하게 성찰해 달라는 것이 그의 주문이다.

“돌출행동을 한 사람들을 정부가 감싸거나 아무런 조치를안 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지금 검찰이 조사하고 있지 않으냐”고 그는 반문했다. 옳은 말이지만, 원론적인 입장의 반복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말하면 이 정부는 화를 낼 것이다. 우리만큼 민주화투쟁을 한 사람들이 어디 또 있느냐고 주장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정부가 옳으니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의 통치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있다. 더구나 남북문제는 동족상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다.

햇볕정책이 아무리 옳다 해도 정부가 독주해서는 안된다. 한발 한발 나아갈 때마다 이해를 구하고, 6.25의 악몽을 쑤시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남한이 철두철미 반공의 토대 위에 존재해왔고, 온 국민에게 철저한 반공교육을 주입시켜 왔다는 사실 역시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정부는 자신이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고, 너무나 방어적이다. 주요정책이삐걱거려 문제가 생기면 정부에 잘못이 없었다는 것을 설명하기에 바쁘다. 즉시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개선하겠다는 약속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는 적극성이 부족하다.

여론이 악화할수록 더욱 방어적이 되고,국민이 내 마음을 몰라준다는 야속함에 빠진다. 이번 사태만 해도 그렇다. 정부여당은 시종일관 ‘방북단 일부의 돌출행동’이란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방어만 하다가 정치공세를 차단할 기회를 놓쳤다.

”김일성 밀랍상에 큰 절하는 사람들을 보내는 것이 남북교류인가. 이런 꼴 보려고 세금을 냈단 말인가”라고 분노하는 사람들의 정서를 외면한 채 햇볕정책이 독주할 수는 없다는 것,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이번 사태의 교훈이다.

그리고 북한 역시 그 교훈을새겨야 한다. 남한이 민주주의 국가임을 잊고 이 정부의 조급함을 이용하려 한다면 얻는 것 보다 잃는 것이 많을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장명수

msch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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