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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부끄럽던 20세기 예술사" 생생한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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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부끄럽던 20세기 예술사" 생생한 증언

입력
2001.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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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예술의 세계“19세기말의 예술은 19세기말다웠지요. 하지만 20세기말은 한마디로 해체(解體)와치졸화(稚拙化)로 규정지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21세기를 준비하는 것 같은 조짐은 거의 없어요. ”

올해 우리 나이로 미수(米壽)를 맞는 박용구옹은 20세기를 ‘부끄러운 세기’라고기억했다. 박옹은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평론집 ‘음악과 현실’(1948)을 펴내고 창작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를 제작하는 등 문화 전(全) 분야에서활약하면서 20세기 예술사를 지켜본 증인이다.

박옹이 무용평론가 장광열(43)씨와 나눈 대담집 ‘20세기 예술의 세계-박용구옹의증언’은 지난 세기의 한국 예술사를 온몸으로 겪은 사람의 생생한 목소리다.

일찍이 세상을 떠난 거장들, 월북을 선택한 예술가들을 돌아보며 그들의호흡과 체취를 21세기의 독자에게 전해준다.

1980년대 초 비오는 날 박옹은 건축가 김수근을 만났다. 김수근이 보여준 수첩에는 70세까지 연도별로작성한 예정표가 적혀 있었다.

70세 이후에는 은퇴해 하와이에서 유유자적하겠다는 인생 스케줄이었다. 박옹은 “외모와는 다르게 참 꼼꼼하다”고 생각했다.“극장, 화랑, 건축사무소, 잡지편집실, 다방까지 겸한 대지 40평의 공간사옥을 디자인한 것이 그제서야 이해가 됐다”고 박옹은 전한다.

그는 20세기에 자살한 예술가들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20세기 이전에동양 3국에 자결(自決)은 있지만 자살(自殺)은 없었던 것 아니냐, 즉 옛날 사람은 책임질 일로 자기 목숨을 끊기는 했어도 혼자만의 개인사정으로목숨을 끊는 일은 없었던 것 같아요.”

동창의 불행한 결혼을 동정해 동반자살한 홍난파의 조카딸, 일본인 부인이 해방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 버리자자살한 조각가 권진규 등을 기억한다.

그는 잊지 못하는 예술인 중 한 사람은 ‘조숙한 만능선수’였던 월북 문인 임화이다. 임화는 시인이었고 문학평론가, 미술평론가, 문학사가였으며 영화배우였다.

그는 스물 한 살의 나이에 가슴에 호소하는 무산계급의 노래 ‘우리 옵바와 화로(火爐)’를 지었고, 노래가사 짓기에 몰두했던 1940~50년대에는 작곡가 김순남과 함께 ‘해방가요의 콤비’로 불렸다.

박옹은 “임화는 불우한 시대의 뛰어난 인재였지만,공산주의 체제에서 지식인 계층이 희생당하는 필연적인 모델로 20세기에서 사라졌다”고 돌아본다.

임화뿐만 아니다. 박옹은 김동석 설정식 채동선 최승희 최인규 김중업 등 20세기한국 예술사의 최전선에서 활약한 거인들과 사귀었다.

그는 이들의 빛과 그림자를 숨겨진 삶이나 일화와 함께 증언한다. ‘비참하고 참담했던 20세기’를고민하면서 박옹은 이렇게 말한다.

“21세기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는 부끄럼을 무릅쓰고 20세기를 반성해야 한다.” 철저하게 반성하기보다는 묻어두고덮어두려는 21세기의 사람들에게 보내는 준엄한 경고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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