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스코어와 펠레스코어는 야구, 축구에서 가장 재미있는 경기를 일컫는 용어이다.1960년 대통령출마를 선언한 케네디는 민주당의 다른 경쟁자들과 함께 TV토론회에참석, 야구에서 어떤 스코어가 가장 재미있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8대7이라고 대답했다.
한 팀이 달아나면 상대가 따라붙는 공방전을 주고 받으면서마지막 순간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가장 흥미진진한 스코어가 8대7이라는 케네디의 답변에 많은 시청자들도 공감했다. 야구에는 또 루스벨트스코어(9대8)와 커미셔너스코어(7대6)도 있지만 케네디스코어가 가장 많이 인용된다. 펠레스코어는 축구황제 펠레가 “3-2의 승부가 제일 재미있다”고 말한데서 비롯됐다. 한국은 역대 월드컵에서 두 차례의 펠레스코어를 기록했다.
86년 멕시코대회 이탈리아전과 94년 미국대회 독일전으로 모두 패했다. 특히 독일전에서는 0-3으로 뒤지다가 막판에 두골을만회, ‘지고도 이겼다’는 외신들의 찬사를 받았을 만큼 두고 두고 아쉬운 기억으로 남는 명승부였다.
최근 ‘히딩크스코어’라는 신조어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한국대표팀이 5월30일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회 프랑스와의 개막전에 이어 지난15일 체코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도 0-5로 참패하면서 ‘히딩크스코어’라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이 히딩크가 감독으로 있던 네덜란드에 0-5로 대패한 전적도 신조어 탄생에 일조를 했다).
체코전 참패뒤 며칠간 편집국은 물론 신문사 밖의 아는 사람들로부터 “0-5가 히딩크의 전공인 모양이지” 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히딩크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더욱 단단해져 가야 할 마당에 정반대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전까지만해도 히딩크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신뢰에는 거의 변함이 없었다. 비판적인 기사를 내보내면-그 내용이 아무리 건설적이라도-인터넷을 통한 네티즌들의 융단폭격과 비난 전화에 해당기자는 엄청나게 시달려야 했다. 심지어 신문사 내부에서조차 “너무 비판하지 말라”는 의견이 나올 정도였다.
히딩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의 초점은 불성실한 자세에 맞춰져 있다. 컨페더레이션스컵대회준우승 직후 일본축구협회로부터 포상휴가를 받은 트루시에는 이를 반납하고 일본프로축구 J리그를 관전하며 대표팀 전력강화방안을 연구했다.
반면 히딩크는한국이 예선탈락하자마자 유럽으로 장기휴가를 떠났다. 이 때 히딩크는 계약서상에 명시된 4주 휴가를 다 썼다. 그런데도 이런저런 이유로 유럽행을멈추지 않고 있다.
체코전 참패뒤 히딩크는 유럽에서 활동중인 한국선수들의 기량점검을 이유로 남았지만 정작 한국선수들의 경기에는 모습을 나타내지않아 국내여론의 분노를 샀다.
비판을 삼가던 많은 축구지도자들도 ‘히딩크식실험’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축구인재풀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검증된 선수를 중심으로대표팀을 구성, 하루 빨리 조직력 배양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트루시에는 오래 전에 베스트 일레븐을 확정짓고 3-5-2포메이션의 틀속에서 선수만몇 명 교체해가며 조직력 훈련을 거듭하고 있다. 그 성과가 컨페더레이션스컵 준우승으로 나타났다. 연봉 100만달러(약 13억원)의 거액을 들여 히딩크를 영입한 이유는 자명하다.
유럽징크스 탈출과 월드컵 16강 진출을 위한 몸부림이다. 이제 축구협회가 적극 나서야 할 때이다. 감독으로서 히딩크의 권한은 인정하되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 절대적인 여론이다.
98년 프랑스월드컵까지 개최국이 16강에 진출하지 못한 적이 없다. 54년 스위스대회에 처음 출전한 한국은 헝가리에 0-9로 대패했다. 월드컵본선역사에 최다점수차 패배의 불명예스러운 기록으로 남아 있다. 개최국이 16강진출에 실패하는최초의 선례를 만든 나라로 한국이 또 하나의 기록을 추가할 수는 없다.
제발 ‘히딩크스코어’가한국축구 붕괴의 상징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 기 창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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