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손상기(1949~1988)는 39세에 요절한 작가다. 3세 때 구루병을 앓아 평생을 척추장애인으로 살면서도 1969년 전국 남녀중고교학생실기대회 수채화 특선, 76년 전북미술전람회특선, 82년 구상전 특선 등 화려한 작가 경력을 남겼다.‘암흑 속에서 고독과 오한을 느끼며, 가혹하고 엄격한 훈련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그의 창작의 변은 지금도 나태한 후배 작가들을전율케 한다.
30일~9월 9일 예술의전당제1전시실에서 열리는 ‘고 손상기 화백 유작전-요절한 문제작가, 그 천재성의확인’은 13년 전 폐울혈성 심부전증으로 세상을 떠난 한 작가에게 바치는 경건한 제례이다.
손상기기념사업회(회장이규열)가 고인이 남긴 유화와 스케치 각 100여 점, 판화 10여 점, 화구와 이젤, 시와 일기 등 300여 점을 모아 전시한다. 지금까지 열린4차례 유작전 중에서 가장 큰 규모다.
고인은 자존심에 치명적 상처를남긴 신체적 불구를 잊기 위해, 그리고 숙명처럼 따라붙었던 그 가난을 잊기 위해 그리고 또 그렸다.
풍경화 ‘자라지않는 나무’ 연작은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자신의 키를 빗댔고, ‘공작도시’ 연작은 자신 앞에서 유난히 커보이고 냉랭했던 대도시의 모습을 포착했다. ‘시들지 않는 꽃’ 연작에는 죽음을 몇 해 앞두고 더 이상 시들지 않겠다는 삶의 의지를 담았다.
대표작 ‘난지도에서’(1983년ㆍ세로 112㎝, 가로 162㎝)를 보자. 허름한 판잣집이 늘어선 골목길, 전봇대가만들어낸 조그만 그늘 속에서 5명의 아이들이 뭔가에 집중하며 놀고 있다.
아무래도 을씨년스러운 풍경. 뒤에는 화려한 고층 빌딩까지. 서정성과 암울한 시대상황, 그러면서도 결코 궁상맞지 않는 삶에대한 긍정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작품이다.
같은 해(1982년)에 제작된‘공작도시’ 연작 ‘단절’과‘아현동 아이들’은 작가의 양면성을 살필 수 있게 한다. ‘단절’은 어두운 갈색 공장 지붕 위로 굴뚝과 연기를 더욱 어둡게 그렸고, ‘아현동 아이들’은 누추한 골목에서도 화면 반대쪽 햇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는 건물 벽을 전면에 내세웠다.
신체의 불구를 넘어, 시대의불구까지 때로는 우울하게, 때로는 활기차게 그려내고자 했던 작가 혼이 느껴진다.
전시를 주관한 엄중구(50)샘터화랑 대표는 고인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는 1983년 작가와 처음 만나 생활비까지 대주며 매년 개인전을 열어주었을 정도로 남다른 애정과 안목을가진 사람이다.
“손상기는 자신의 삶을 역설적으로 비웃듯 영원히 시들지 않는, 마른 꽃을 즐겨 그렸다. 또한 그는 일찍이 죽음을 예감하고 촌음을 아껴 그림을 그렸다.
후배들을 한 번도 칭찬한 적이 없는전혁림(전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선생이 ‘굉장히 시커먼 그림인데 무척 좋다’고 말한 유일한작가였다.”
전시 기간에는 그의 2번째부인 연우(43ㆍ본명 김분옥)씨가 유족 대표로 자리를 지킬 예정이다. (02)580-1612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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