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가나자와(金澤)시에 있는윤봉길의사(1908~1932)의 암장(暗葬)터를 답사했었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上海) 홍구공원에서 일제침략의 수뇌부를 살상한 의거로 잡혀 상하이파견군 주력 제9사단의 소재지인 가나자와로 연행된 윤의사는 그 해 12월 19일 9사단 공병작업장에서 총살당했다.형법절차를 무시당한채 암장되었다가 1946년 3월, 13년만에 효창원에 모셔졌다. 그의 순국은 잔혹한 한국 강점을 끝내고 세계 침략의 야욕을 거두어 평화대열에 동참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거사였다.
윤의사 유해발굴에 동참한 이래 오늘날까지 50년간 암장지를 돌본 윤의사연구회 박인조(朴仁祚)회장의 안내로 찾아간 곳은 가나자와 시청옆 혼다노모리(本多森)공원 안에 우뚝 솟은 소위 성전(聖戰)기념대비였다.
시대착오적聖戰 타령
근대사와 독립운동사를 공부하고 있는 나는 ‘대동아성전대비(大東亞聖戰大碑)’를 보고 경악과 개탄을 금할 수 없었다. 요즘은 역사교과서 왜곡과 총리 신사참배 문제로 대일감정이 안 좋은때다. 아직도 ‘성전’운운하는 모습을 보며 일본인의 역사인식과 양식을 의심치 않을 수 없다.
이 비석은 높이가 12㎙이고 둘레는 기단의 전후연결길이가 각각 3㎙ 내외로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그 자체보다는 비에 새겨진 내용이 세계 패도적 황국사관으로 각인되어 우리를 경악케 한다. 이 비전면 우측에 새겨진 내용이다.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기 위하여 천황이 시작한 전쟁은 천년 만년 계속된다. 일본의 장래를 빛내는 모범이 되리라.” 비석뒤쪽에는 또 “대동아공영권을 목표로 한 정의의 전쟁은 높은 명예가 나의 음을 가득차게 한다. 그 명예를 세대 넘어 후손에 넘겨 주어야 한다.성전을 수행한 영광은 영원히 끄지 못하리라”고 쓰여있다.
침략전쟁이 정의의 전쟁?
또 팔굉위우(八紘爲宇ㆍ일본서기에서 나온 말로 온 천하가 한 집안이란 뜻)라는 글자가 쓰여진 오른쪽 윗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보인다.
"세계 구석구석까지 지배하여 천황을 정점으로한 나라를 만들자…사랑하는 조국의 역사가 비뚤어져 왔으나 조국의 명예를 구하려는 청정(淸淨)한 소원과 올바른 정신이 이에 소생하도다. 잡담은 필요없도다. 정의의 전쟁을 높이 구가하는 전사자의 유품이 말할 것이다. 정의의 대동아전쟁을 마음속으로 후손에 전하자. 그것은 영원히 빛을 이어 갈것이다."
이 비석에는 단체와 개인명의의 헌납자 명단이 나열되어 있는데 최소한의 헌금이 5만엔 이상이라고 한다. 개인 및 단체 헌납자와 특별 협찬자 합계가 939나 된다. 그 중 한국인은 탁경현(卓庚鉉) 등 7명으로 이들은 소위 가미카제(新風)특공대원으로오키나와(沖繩)에서 전사하였다는데 어찌해서 헌금자 명단에 들어 있는지 의문이다.
개인헌금자의 경우 도쿄도로부터 각 현과 한국 브라질 하와이 등지까지 망라되어 있다. 그 중‘위안부는 상행위’라고 망발한 오쿠노 세이스케(奧野誠亮ㆍ전 문부상)와 역사왜곡의 장본인 고보리 게이치로(전 도쿄대 교수)도 끼어 있다.
성전비 당장 철거 마땅
이 비는 2000년 8월 4일 완공되었는데 현(이시카와)정부가 시대착오적인 내용을 알면서도 허가를 내준 것은 상식 이하의 일이어서 의아심이 든다. 이곳 출신 전 총리인 모리 요시로(森喜朗)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이에 대해 이 지역출신 사민당의원 히라타 세이이치(平田誠一) 등 지식인들은 인접국들에 대한 가해의 역사를인정한 중앙정부의 입장과도 배치된다며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극우파 800명이 이 성전을 극찬하는 대규모의 집회를 열었으며, 이들에 반대하는 항의모임도 있었다고 한다.
애국지사 윤봉길 의사가 총살당한 곳으로부터 불과 10리 거리에 침략자의 거침없는 위세를 자랑하고 서 있는 이 비석은 당장 철거되어 마땅하다. 국치일(1910. 8ㆍ29) 91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일본의 맹성을 촉구한다.
이현희
성신여대교수한국 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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