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 8월29일 스위스의 바젤에서 제1차 시오니스트 회의가 열렸다.시오니스트란 시오니즘의 신봉자를 뜻하고, 시오니즘이란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유대 민족주의 운동이다.
시오니즘은 또 배타적인 유대 민족주의일반을 뜻하기도 한다. 이 말들의 어원인 시온은 예루살렘에 있었다는 언덕 이름이다.
다윗이 이 언덕 근처를 수도로 삼았고, 그 아들인 솔로몬이그 곳에 야훼의 성전과 커다란 궁전을 세워 유대 민족의 정치ㆍ신앙의 중심지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 뒤 시온은 예루살렘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를 상징하게 되었다.
바젤의 제1차 시오니스트 회의를 소집한 사람은 헝가리 출신의 오스트리아 저널리스트 테오도르 헤르츨이다.
그는 1891년부터 1895년까지 빈에서 발행되는‘신자유신문’의 통신원으로 파리에 체재했는데, 그 기간에 드레퓌스사건을 목격하고 유대인들의 단결과 국가 건설을 결심했다.
드레퓌스 사건이란 프랑스군의 유대인 대위 알프레 드레퓌스가 프랑스 군부의 음모로 독일군의스파이로 몰린 사건이다.
시오니즘 운동이 일관되게 팔레스타인만을 재건 국가의 보금자리로 상정한 것은 아니었다.팔레스타인은 시나이 반도, 영국령 동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여러 후보 지역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이 고대 유대 민족의 거처였던 만큼,이 곳에 대한 유대인들의 정서적 집착은 다른 곳들과는 아주 달랐다.
1901년의 제5차 시오니스트 회의 이후 잠시 수면 아래로 잠겼던 시오니즘 운동은 1905년의 러시아 혁명 실패 뒤 러시아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힘을 얻었다.
그 뒤 40여년 동안 유대인 수십만명의 이주와 정치적 공작의 결과 1948년에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 국가가 수립됐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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