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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 칼럼] 마라도 자장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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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 칼럼] 마라도 자장면 이야기

입력
2001.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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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서남단 송악산 선착장에서 하루에도 예닐곱 번은 배가 뜬다. 정원이 2백 40명이나 되는 유람선이다.국토의 최남단 ‘점(點)’으로 찍혔던 마라도는 요즘 매일이 성시(成市)다. 관광이든 순례든, 이 ‘끝의 끝’에 와서 무엇인가를 보거나 듣거나 생각한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여름 방학이 끝나기 전에 부모를 졸라 길을 나선 듯한 어린이들, 새마을운동 모자와 복장을 갖춘 떠들썩한 어른들, 꼭 부둥켜 안으려는 기회로 이 희한한 극단(極端)의 뱃길에 오른 풋나기 연인들….

해발 30m 섬에 오르면 제일 먼저 맞이하는 간판이 있다. ‘짜장면’이다.

‘짜장면 시키신 분’이라는 TV광고가 그대로 브랜드다. 몇 발짝 뒤에 또하나의 ‘짜장면 집’이 있어, 여기도 ‘원조’시비가 있는 모양이다. 참으로 느닷없는 곳에서 만나는 ‘짜장면’이고, 그 치열한 경쟁이고, 끝의 끝에 까지 이른 삶의 현장이다.

마라도의 ‘별미 짜장면’을 시식하는 것으로 순례를 시작하는 어린이들은 한결같이 영양과 체격이 좋아 보인다. 소아 비만이 걱정스러운 수준이다.

마라도에 까지 실려와서 ‘짜장면’의 재료가 된 밀가루는 아마도 미국 시카고 곡물시장에서 우리가 사들여온 엄청난 분량의 수입곡물 중 일부일 것이다. 우리는 한 해 1,500만톤 이상의 곡물을 사들여 온다. 한국은 일본에 이어 세계 제2위의 곡물 수입국이다.

1,500만톤은 5만톤 짜리 초대형 곡물운반선 300척에 실은 분량이다. 일요일 빼고 매일 곡물 5만톤씩이 국내 항구에 하역되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국내 생산량은 쌀 500만톤을 포함 한해 600만톤인데, 이는 겨우 25%의 식량 자급률이다. 40년 전인 1961년의 자급률이 95%였다는 통계를 보면, 식량수급 구조의 급격한 변화에 놀라게 된다.

아이러니는, 자급률은 이렇게 낮은데도 쌀 생산량은 남아돈다는 사실이다. 지난 21일 농민 대표들이 서울로 몰려와 ‘쌀값 폭락’ 대책을 호소한 것은 햅쌀 추수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데도 현재의 재고량이 105만톤이나 되기 때문이다.

멀잖아 추수가 시작되면 값이 떨어져 농민만 울릴 것이 너무나도 뻔하다. 여당일각에서 남북협력기금을 이용한 ‘남는 쌀 북한 지원’방안을 제기한 것은 옳은 정책 방향이다. 8ㆍ15 남북공동행사로 인한 정치적인 파장이 고조되고 있고, 일부 방북인들에 대한 사법적 소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들어 논의부터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당당하지 못하다.

마침 세계식량계획(WFP)의 캐서린 버티니 사무총장이 북한 방문을 거쳐 서울에 와서 북에 대한 식량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북 인구 3분의1이 만성적 영양실조상태이며, 올 봄가뭄의 여파로 오는 10월까지 50만톤의 식량이 당장 부족하다는 것이 그의 호소다.

북한의 식량부족과 그 지원 논의는 돕는 측에 일종의 ‘피로감’을 주고 있다는 의견이 있다. 언제까지, 얼마나 도와야 스스로 살아나가겠느냐는 이야기다. 식량보다는 식량생산 방식을 개선하도록 돕는 것이 옳다는 그럴듯한 견해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6ㆍ15공동선언이 함축하는 우리의 국가적이고 민족적인 희망과 비전의 최대 목표이자 전략은 ‘평화’임을 잊어선 안된다. 어쩌면 ‘통일’보다 더 소중하고 긴요한 것이 ‘평화’라는 데 우리는 먼저 합의해야 한다. 영양과잉으로 살빼기를 서두르는 아이들 곁에 영양실조의 이웃이 살고 있는 곳에 진정한 ‘평화’는 없다.

갑자기 ‘짜장면’이 명물이 된 국토 남단의 마침표같은 마라도에 와서 아직도 사람들을 가두는 국가보안법이며, 그 수갑채움의 차가운 현실이며, 어디서는 남고 어디서는 ?C는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슬픔이다.

칼럼니스트

assisi6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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